[평론] 2008 대구보건대학 대구아트센터 인당박물관 김길후 개인전 ②

 

블랙티어스 어둠의 껍질을 벗기다

 

예부터 서양에서 검은색은 주로 죽음, 공포 등 불길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을 암시하는 모티프로 받아들여져 왔다. 독일 표현주의의 형식을 빌려 한국적 감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김길후는 통용디는 부정의 어둠이 아닌, 예날 우리 어머니들이 밤새 켜놓은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고 귀지를 파주며 타닥타닥 회롯불에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던, 그런 따뜻한 어둠에 깔려 있는 토속적인 정서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어머니 품 속 같은 어둠은 도시 속의 수많은 군중 안에 갇힌 외로운 인간들의 불안한 존재감, 고독, 그리고 소외를 대변하는 오브제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어둠의 양면성을 종이를 벗겨내는행위를 통해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드이 보여준다. 짙은 블랙으로 채운 종이 위를 못으로 긁고 망치로 두들겨 바늘처럼 내리 꽂히는 날카로운 선을 만들고 검게 칠한 종이의 겉 표면을 찢고 벗겨내 그 밑에 꽁꽁 숨겨져 있던 어둠의 하얀 속살과 못 자국의 상흔을 드러낸다.

 

짙은 외투 속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인물은 지탱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에 눌려 물감을 타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드러낸다. 막다른 복도 끝에서 나타나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인물은 감옥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폐쇄적인 분위기와 문에 붙은 번호와 함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끊임 없이 감시 당하고 호명 당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정서를 표현한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 판화에서나 볼 듯한 날카롭고 세밀한 선, 2차원적인 평면성의 강조 등은 20세기 초반 독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표현주의를 정립해나갔던 Brucke그룹 작가들의 작품과 많이 닮아 있다. 김길후 작품들은 이렇듯 정형화된 인물이나 배경이 아닌 날(raw)것의 감정, 느낌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편적인 미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작가는 정형화된 아름다움 속에 내재한 허구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과 그 주변의 사물을 포장하고 있는 모든 겉치레와 위선을 벗겨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은 촛불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오브제를 통해 표출된다. 작가가 스스로 촛불인간이라고 명명한 작품을 보자. ‘자신을 까맣게 태우고 난 후의 잿더미에서 새로운 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 속의 인물은 강렬한 블랙을 배경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빛 속에 서서히 녹아 들어가며 흑과 백의 구분을 무료화시키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을 표현한 또 다른 작품에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보는 이를 응시하는 무수한 익명의 인물들이 불꽃에 그을린 것처럼 검은 물감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쩌면 작가는 연소 후에 발견되는 아름다움의 가능성보다는 짧게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으로서의 연소 그 자체에서 순간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미의 단편성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김길후의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마치 가슴을 짓누르는 듯 무겁게 다가오지만 결코 체념과 상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어둠을 직시하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궁극의 긍정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수용한다는 점에서 블랙이 가지는 매력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의 지향점을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기다린다고 표현했다. 뒤틀리고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며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모습에서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김길후는 어둠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작가다. 온 몸에 긁힌 옷 자국이 선명한 채 어둠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과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인물은 절망 그 자체처럼 보이지만 그의 품 안에는 마지막 남은 숨을 헐떡이는 듯한 새 한 마리가 희미한 희망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온기를 꺼져가는 한 생명을 지켜내려는 인물의 모습에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엿볼 수 있다. 희망의 모티브로서의 새의 이미지는 김길후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검푸른 파도 속으로 침잠하는 인물의 한 가운데에도 하얀 새가 날아오르고 있으며 바닥에 망연자실 무릎을 껴안고 주저 앉아 있는 인물의 주위를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새들이 둘러싸며 어둠은 늘 빛과 함께 오는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회색 빛 어둠을 뒤로 하고 무너질 듯 꼿꼿이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인물의 머리 위에는 김길후의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TRANS(초월)’이 아로새겨져 있다. 여기서 초월이란 단순히 어둠으로부터의 초월이 아니라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흑과 백, 선과 악, 부정과 긍정을 서로 상반되고 대치된 이원성의 개념으로 보는 것 자체에서 자유로웢야 한다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과 빛은 상호보완적이며 늘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여유로움을 견지하는 작가의 유연한 태도는 동그랗게 오므린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보는 인물의 모습에서 하나의 유희(PLAY)로 발전한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은 첼로를 키고 트럼펫을 부는 인물들을 통해 암흑 속에 울려 퍼지는 한 줄기 빛 같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김길후에게 있어서 블랙은 이 모든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감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방식이다. 가식적인 밝음을 표방하는 빛 보다는 정직한 어둠이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작가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구절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비유했다. “인간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것은 인간이 우주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이 태초에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 듯이 인간은 어머니 자궁의 어둠 속에서 처음 잉탸되어 어둠 속에 눈을 감는다. 이처럼 어둠은 인간 존재의 시작이자 끝이며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잉태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블랙의 어두운 단면이 아닌, 그 뒤에 가려진 무수한 빛의 다년들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어서 김길후는 그 누구보다도 블랙이라는 색을 자유자재로 반주할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다. 우주와 같은 그 외 작품세계가 나날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박혜연(미술평론가)

 

 미 예일대에서 유럽사(학부) 컬럼비아대에서 동아시아 지역학(석사)을 전공하고 올해 5월부터 뉴뮤지엄(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펠로우(Fellow로 일할 큐러이터이자 미술 비평가 지망생, 비평과 기획전을 통해 유망한 한국 작가들을 뉴욕, 나아가 세계 미술게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에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 또한 닫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믿는 로맨티스티기도 하다.


Black tears Peeling Away the Skin of Darkness

 

Since ancient times, the color black has been used as a motif in the West to conjure up images of ominous and negative incidents such as death and horror. Kim Gil-Hu, in his effort to express Korean sentimentality in the form of German expressionism elicits a nostalgic ethos of a "warm" darkness, in which our mothers used to do needlework clean our ears, or bake sweet potatoes in the charcoal burner.

 

However, as society transitions to rapidly changing modern life, the "warm darkness like a mother's embrace (quotation from the artist), is transformed into an object that represents the insecure existential crisis, loneliness, and isolation of restless individuals caught in the middle of an urban crowd. The artist exposes such double-sided nature of darkness through the action of peeling off the paper, just like peeling away layers of an onion. Over the paper painted in thick black, Kim creates needle-sharp lines by scratching and hammering the surface with nails. Then he carefully rips and peels off the uppermost layer of the paper to expose the white skin of darkness and nail marks.

 

The image of a person who stares blankly into the empty space with his hands buried deep inside his coat pockets reveals the fragile existence of a human being who is about to dissolve into a flow of paints, burdened by the unbearable weight of life. An ominous figure who appears from the end of the hallway and narrows down his distance towards the viewer evokes images of a prison, along with the numbers written on the doors? It expresses the anxiety of modern day individuals who feel as if they are constantly supervised and called out by an invisible force. The stark contrast between black and white, sharp and sensitive lines that remind one of a lithograph, emphasis on the two-dimensionality of the surface are similar to the works by the Brucke Group who worked in Dresden at the beginning of the century, paving away the path for German Expressionism. As such, Kim Gil-Hu's works focus on expressing the raw emotion and feeling of a subject instead of a standardized figure or landscape.

 

Claiming that "I cannot accept a universally accepted beauty as beauty, " the artist tenaciously chases after the emptiness that lies within a constructed beauty. His desire to expose every hypocritical surface which embellishes a human being and the objects surrounding him, is conveyed through another important object, namely, the candle. Let us take a look at the work that the artist entitled "Candle-Man. " Just like the artist's statement that "I discover the possibility of a new beauty in the heaps of ashes left after the candle burns itself, " the figure in the painting is slowly melting into the burning light against the dark background, obliterating the distinction between black and white. In another painting, numerous individuals staring blankly at the viewer look as if they are about to dissolve into liquid along with the black paint that looks like soot Perhaps the artist wants to address the ephemeral nature of beauty that can only exist as a fleeting moment in the process of combustion rather than divining the possibility of a beauty that can be found after the task of self-combustion is completed.

 

At first glance, Kim Gil-Hu's works seem to engulf the viewer with heaviness. However, they do not speak of renunciation or loss. Instead, upon multiple viewing, the artworks start to convey the message of an ultimate affirmation that is available only to those who can stare straight into the eye of darkness, Confessing that he was attracted to the color of black because it absorbs and embraces every light. Kim expressed his philosophical standpoint as "waiting for hope in a place without hope. It is perhaps no coincidence that one is reminded of Albert Camus's existential philosophy or Samuel Beckett's Waiting for Godot when viewing the works of Kim Gil-Hu, who never abandons his belief in an invisible hope even when standing eye to eye to an ugly and twisted reality.

 

In short, Kim Gil-Hu is an artist who possesses the ability to see beyond the darkness instead of being caught within its boundary. The figure with an eye like tears who crouches in the dark with nail marks all over his body seems like the ultimate representation of despair itself; however, the image of a bird drawing its last breath within his arms hint at the vague possibility of hope. We witness the artist's humanism in the figure's attempt to safeguard a withering life with the warmth of his body. The image of a bird as a metaphor for hope constantly appears in Kim Gil-Hu's works. A white bird flies away as a figure drowns into the black waves of the sea. Numerous white birds surround the vicinity of a figure crouched on the floor with despair, reminding us of the irrefutable truth that darkness is always accompanied by light.

 

Over the head of a figure who stares out at the viewer upfront against a grey background, one can find the word "TRANS" written across the surface. It is the keyword to understand Kim Dong-Gi's artwork. Here, "TRANS"refers not only to a transcendence from darkness, but a freedom from every device that entices us. In that sense, the artist is saying that we need to free ourselves from seeing black and white, good and evil, negation and affirmation as an oppositional concept set up against each other. The artist's flexible belief that darkness and light are complementary and exist alongside each other is transformed into a kind of play in the figure who sees the world through the circle formed by his thumb and index finger. The infinite affirmation toward life that cannot be extinguished in the midst of dark reality is born again as the music of light played by the cellist and the trumpeter in the paintings.

 

To Kim Gil-Hu, black is the most effective means of expression in both revealing and hiding all this. Confessing that he feels more comfortable in an honest darkness than a hypocritical brightness, the artist likened his work to the words of French writer Alphonse Daudet: "The reason humans think of home when gazing at the stars in the dark is because they are beings who originally came from the universe. "Just as God creates light from darkness in the beginning, man is first conceived in the darkness of the mother's womb and ends his life in darkness. As such, darkness is the beginning and end of human existence and conceives both beauty and ugliness at the same time. As an artist who can reveal not only the dark side of black, but also its countless dimensions of light hidden behind the dark facade, Kim Gil-Hu is an artist with remarkable talent. look forward to witnessing the continual growth and matunty of his world that is as grand as the universe.

 

Haeyun Pak (Art Critic)

 

A graduate of Yale University (BA in European History) and Columbia University (MA in East Asian Studies), Haeyun Park aspires to be a curator critic. She takes the first step towards this goal with her work as a Fellow at the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New York starter this devoted to actively promoting promising Korean artists to the New York art world and beyond through critical writings and helpless romantic who still believes in the possibility of art to move people's hardened 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