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08 김길후 단체전

 


  

2008 갤러리SAM 주최 '민감한 그릇'전

The Sensitive Vessel, Gallery SAM, Busan, Korea 


 ● 김길후_벌거벗은 타자성의 대면 


 김길후의 작품은 개인사의 은밀한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주로 그의 인물이 등장하는 곳은 꽃밭이다. 그것도 백합을 키우는 꽃밭이다. 그 꽃밭 속에 등장하는 남자의 은밀하고 기묘한 반응을 통해 성에 대한 은유적 의미들과 내밀한 경험을 넘겨짚는다. 꽃, 여자, 달, 벌레, 나비, 물주기 등의 행위와 관계를 통해 우리의 잃어버린 건강한 성충동을 일깨운다. 그것은 자연에 교감하는 일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원초적 시선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꽃밭이 하나이기를 욕망하는 일이다. 


 꽃밭에 물을 주는 남자의 모습은 주로 까까머리 중학생 정도의 모습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막연한 성적 생리와 충동을 그는 꽃밭에 누워서 벌레를 보거나 활짝 핀 백합 사이로 사위어 가는 달을 시간대로 그려놓는다. 어둠이 짙은 시간대이지만 그 어둠은 달이라는 상징과 백합꽃이라는 환경이 주는 의미들로 해서 훤하게 밝은 곳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은밀한 어둠 사이로 훤하게 밝은 자신의 공간이 된 것이다.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발가벗고 꽃밭에 물을 주는 남자의 모습은 물뿌리개의 표현이 마치 성기를 연상케 하고, 느닷없는 요의를 해소하는 순간을 보는 듯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내밀한 의도, 꽃밭에 물주기는 나와 물, 물뿌리개와 꽃밭이 하나가 되는, 소년기의 호기심과 성적 갈등을 우리에게 싱그럽게 환기시켜 준다. "바타유에 의하면 에로티시즘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옷을 벗는 행위, 즉 벌거숭이가 되기에 있다. 왜냐하면 두 명의 인간이 닫힌, 분리된 상태를 포기하고 순간적이나마 타인의 타자성에 굴복하는 것은 벌거벗은 육체끼리의 대면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조르주 바타유가 주장한 것처럼 각 개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개체로 여기며 에로틱한 시도, 즉 자기 자신의 육체라는 외로운 한계를 깨드림으로써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찰나적이나마 타인과의 연속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바타유에게 있어 에로티시즘이란 '죽음까지를 포함한 인생의 전면적 긍정'을 의미한다."


 검은 화면에 흰색으로 드러나 있는 인물은 대체로 바탕종이를 찢거나 뜯겨진 자국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체를 묘사하는 방법으로서의 이 방법은 내적인 심리상태, 상처와 갈등, 불안과 호기심을 잘 보여준다. 벌거벗다 못해 뜯겨진 몸은 일체화를 시도하는 승화가 아니라 일종의 상처이다. 이 자국들이 만들어내는 선조야말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기저를 이룬다. 그리고 김길후의 독특한 어법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벌레에 놀라고 비속에서 나비를 맞는 모습은 꽃밭이라는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사건화 하고 있다. 이 사건들은 인물의 구체적 묘사보다 도식화된 눈이나 얼굴의 모습에 의해서 인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사건에 집중하게 한다. 나비, 꽃밭, 비라는 상황은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이 아니라 사춘기의 한 소년이 갖는 총제적인 상황의 상징이다. 그것은 하나의 은유이며 자연으로서 자신과 자연으로서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뜯겨진 몸으로 일체화를 갈구하는 그 상처는 지금 우리를 사춘기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 풋풋한 호기심은 한 인간을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성이란 단순히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환상과 상징의 복합물이며, 만족과 상실의 유아적 환상에 의해 주도되는 것, 즉 생식적 유용성으로부터 일탈 현상이다. 성은 모든 호기심의 원동력이 되고, 성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모든 행위의 근원이 된다."


 욕망의 '민감한 그릇'은 파편화된 현대인의 자기 성찰적 물음을 제기한다. 총체적 동일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과 동일성이라는 허구와 확신에 대한 양면성을 물음으로 삼아 볼거리로 전락한 오늘의 문화와 인간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세계의 성찰에서 소모품으로 변한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 메타포로서 새로운 외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새로운 접근이나 이해라는 면에서 그렇다. 그들의 작품이 구상적이든 비구상적이든 혹은 서술의 내용이 이해할만 하더라도 실은 그것은 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어긋남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다머는 모든 이해는 선입견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림이라는 매체가 하나의 메타포라고 생각되지만 무엇보다 "메타포는 우리의 언어게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언어문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새로운 표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우리가 지금까지 생가해보지 못한 것을 서술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지식의 진보를 가져온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 본질이나-육체적 실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더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초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꽃이 아니고, 나비가 아니고, 벌레가 아니고 비가 아니고, 달이 아닐 때, 그런 순간에 그 사물들은 자신의 사물성을 보이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들을 보여준다. 자신의 얼굴이 아닐 때 비로소 자신을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게 한다. 자아는 타자성에 의해서 제대로 인식된다는 이 양가적 속성이야말로 이들 작품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부분이다. 강박과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면서 타자의 욕망이다. 이들 작품은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할 때,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는 현대인을 재현하려는 것은 재현이 상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일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준열함이야말로 상투적으로 세계를 대하는 우리들이 이들에게 읽어야 할 몫이다. ■ 강선학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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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 대구 2008: 이미지의 반란

Art in Daegu 2008: Uprising of the Images展 


Commissioner 장미진, 안규철,이원곤, 대구시립미술관 개관준비팀 

주최 / 대구광역시 주관 / (사)대구미협 2008 대구현대미술전 운영위원회

 





 ■ 『아트 인 대구 2008 : 이미지의 반란』展 


구성 및 참여작가 Section 1 / 텍스트성 :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 / Commissioner 장미진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서 파생하는 문제들, 회화영역의 확장 등 ● 정병국, 임현락, 김길후, 전종철, 박종규, 정태경, 김선혜, 김기수, 송중덕, 이태호, 고진한, 장준석, 김결수, 정용국, 이장우, 차계남, 이명미, 김승영, 노원희 


 ● 형상성의 귀환과 반란이라는 주 토픽 하에 섹션1의 소제목은 「텍스트성: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로 한다. 형상(形像)의 토포스(장소, topos)를 돌아보더라도 그 자리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어느 지점엔가 존재하기도 하고 부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극사실적인 그림이라하더라도 그 형상의 형상성은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러한 기본 관점을 바탕으로 섹션 1에서는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재현성에 초점을 두되, 이미지와 원전(텍스트)의 동일성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연관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에는 인간의 내적 자연이나 심리적 현실의 반영도 포함된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화가 뿐 아니라 장르를 넘어 텍스트성의 논의에 동참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선정하였다. 일부 작가는 표현 방법에 있어 설치 및 영상, 공예 분야에 속하지만, 그 이면의 동일한 문제영역을 감안하여 추천하였음을 밝혀둔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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