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10 김길후 단체전

 

순수거리_뛰어넘고 흐르면서 융합하기 PURE DISTANCE_Leap, Flow, Mix-up展

파주출판도시 아트플랫폼 제1기 입주작가 기획展 

 

  

  

<참고>

■ 네오룩_www.NEOLOOK.com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의 연금술

 

 특유의 치열함으로 세태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정면으로 도전해온 작가 김길후 화가는 운명의 절벽에서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그는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히 절제된 도덕을 강요해 왔다. 20여 년을 한눈 팔지 않고 오롯이 작가로서 한 길만 걸어온 그이지만 초기의 상당한 작품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매사를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일관해 온 그이기에 이러한 사실은 그 이유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그 해답은 보편적인 미를 앎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작가의 신념에서 찾을 수 있다. 타인의 평가보다 스스로 세운 준엄한 기준에 비춰볼 때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에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99년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13천여 점의 작품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작가는 그 상실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출발햇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고 과거의 흔적은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다시 로 되돌아 간 그는 자신의 운명에 제대로 된 승부수를 둔다. 진정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루 2~3시간만 자는 거의 기행에 가까운 수행이 반복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첫 결실이 2001년부터 2004년에 완성된 “Black Tears” 연작이다. 모든 열정과 에네지를 쏟아 부었던 이 시리즈에서 그가 유독 고집하는 것은 블랙이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흡수한다는 점에서 블랙의 매력을 발견한 그는 가식적인 밝음을 표방하는 빛보다 정직한 어두움이 편안하게 다가왔다고 술회한다. 자전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 연작들은 캔버스 위에 종이를 여러번 바르고 먹과 아크릴로 블랙 층을 만든다.

 

 이어서 못으로 긁거나 망치로 두들겨 날카로운 선을 만들고 종이를 찢거나 벗겨내는 방식으로 캔버스에 생채기를 낸다. 그 종이의 상흔을 따라 불안과 소외에 떠는 상처투성이의 연약한 인간상을 아로새겼다. 무의식의 심연에서부터 뿜어져 나노는 존재의 고독과 슬픔이 응축된 이 작품들을 보고 한 관객은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기도 했다. 자기보다 더한 슬픔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때 작가는 슬픔은 더 큰 슬픔을 통해 치유될 수도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다.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이 발아된 순간이었다. 절망의 깊은 늪에서 빠져나온 한가닥의 희망은 이 연작에 사용된 안료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면의 배경은 칠흑처럼 어둡지만 그 속에는 금, 은 같은 금속가루이나 진주가루가 섞여 있어서 산란하는 빛들을 볼 수 있다. 상실된 상황에서도 흐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새의 긍정을 또 한 번 발견하게 된다.

 

 깊은 어둠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해서일까 그의 화면은 한동안 밝아지는데, 이것이 바로 “Black Tears”를 발표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시작된 비밀의 화원시리즈이다. 이 가상의 환타지 화원은 더 이상 현실의 법칙을 적용받지 않아도 되므로 작가는 유년기의 감수성을 천연덕스럽게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았다. 이 화원에서는 무의식의 심층에 숨어있던 성장기의 욕망이 뱀처럼 꿈틀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백합과 몸이 하나가 되거나 연인처럼 몸으로 감싸고 어루만지는 것 혹은 발기된 성기를 들이대는 식이다. 이것은 “Black Tears”의 상처를 위한 무의식적 욕망이 만들어 낸 일종의 가상치료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더 서글퍼질 수도 있다. 이제는 영원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백합과의 기억은 이른바 칼 드로잉으로 알려진 에게해의 진주연작으로 이어진다. 에게해의 진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의 애칭이다. 수많은 정적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정절을 지켜낸 이 고대 여인의 표상에서 그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실망스럽게도 이 여인에 대한 그리스신화의 내용은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폴 모리아 악단의 아름다움 멜로디에 매료되어 그 스토리를 찾게 되었고, 마침내 에게해의 진주 연작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 페넬로페의 머리카락은 에게해에서 부는 바람을 따라 하늘거리는 식물들의 형상으로 과장되어 있는데, 백합이 자주 등장하는 것울 보면 비밀의 화원정서가 연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붓 대신 칼을 통해 보다 장식적이고 세밀한 선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 외에 그 내용적인 부분은 앞의 연작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최근, 작가는 얼굴처럼 치장할 수도 없지만 진실하고 순수한 표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손과 발을 천착하고 있다. 눈으로 보고 뇌로 인지된 사물은 손의 촉감을 통해서 비로소 완전하게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손은 거짓을 전달할 수 없다. 촉지된 그 느낌 그대로를 뇌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를 지탱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발의 역할 역시 중요하지만 시야를 벗어나 이어 그 존재를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오리발견()’ ‘피아노’ ‘고뇌하는 왕’ ‘My Life’ ‘사유하는 손등 최근의 연작은 우직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존재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손과 발에 대한 성찰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연작을 발표해온 김길후의 작업 패턴을 보면 그의 작업은 특정한 테마 아래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치밀하게 앞뒤 맥락을 계산해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치열했던 삶이 현재 시점에서 퍼즐게임처럼 하나 하나 맞추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루어진 것에 대해 자만하지 않고 자신에게 엄격하며 치열한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행복해 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 예술가다. 하기에 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으로 다가온다.

 

■ 안규식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