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2011 김길후 개인전 |
붓다의 나들이 | 2011년 5/6월 VOL.12
살아서 전설이 되고 싶은 화가
향기로운 사람들 / 최현태 / 프리랜서
예상이 빗나갔다. 반전은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가운 봄비련만 일본 대지진 이후 무서워져버린 빗 속에서 김길후 화가를 만났다. 화실이 있는 대구 범물동 아파트 숲에도 벛꽃은 난분분 흩어지는데 그의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그래서 반전이다. 그를 만나기 전 검은 색이 가득한 그의 작품을 보아버린 탓일까. 하지만 반전이 나쁘지 않다. 어둑신한 저녁 무렵,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데 우울한 예술가를 만나는 것은 힘겨울 수 있으니.
5월, 눈부신 5월에
200호짜리 대작부터 소품까지 화집에서 만났던 작품들이 빼곡한 작업실에 음악이 찰랑거린다. 차를 준비하는 선생의 손길이 분주한데 그 와중에 주지 스님의 카메라 셔터소리도 배경이 된다. 이 장면도 꽤 근사하리란 생각을 하며 분위기를 진지모드로 변환시켰다.
-아버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고 명심보감을 읽었다는 어린 시절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제 아버지 되어보니 자식과의 관계에 대한 의미가 새롭겠습니다.
“온갖 책들을 접할 수 있는 운 좋은 시절을 보냈는데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어린 마음에도 인간의 도리를 짚어주는 명심보감이 좋았던가 봐요. 학교 갔다 오면 늘 명심보감을 펼쳐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참 특별한 분들이세요. 한 번도 나를 혼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참 잘했다’ 였습니다. 너무도 통속적인 ‘부모 되어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옛 말이 사무치는 요즘입니다. 건강 안 좋으신 부모님의 보호자가 도어야겠다는 각오로 행복한 아들 노릇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들어 있는 이 달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버이는 자식을 바라보고 자식은 어버이를 새삼 돌아보는 오월에 김길후 작가의 자식된 마음이 읽혀진다.
-보성선원에 자주 오신다 들었습니다. 불교와의 인연 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아주 오래 되었죠. 할머니께서 경남 고성의 청량 암 신도였는데 삼베들 짜면 발이 제일 고운 것으로 한 폭 골라 부처님께 올렸고, 첫 과일을 따도 부처님께, 참깨를 털어도 부처님 전에 올리는 신심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집 옆에 절이 있어서 중학교 다닐 때는 법당에 가서 자주 앉아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보살님 한 분이 무슨 격정이 있어 이렇게 새벽마다 절에 오냐고 하실 정도였지요. 지금도 부산 본가에 가면 매일 목탁 소리를 들을 수 있구요. 보성선원과 인연 되면서 절에 오는 일이 편안해졌습니다. 스님의 자비심으로 전에 좀 더 머물 수 있었고 절 문턱 이 낮아졌다고 할까요?”
반겨주고 편안한 절 보성선원, 자주 하는 이야기지 만 도심포교당 보성선원의 미덕을 또 한 번 새길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이성을 끝까지 쥐어짜면 과학이 되고 감성을 끝까 지 밀어붙이면 예술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예술 가가 된다는 것은? 검은 피카소 바스키야를 발굴한 뉴욕 메리분 미술관의 디렉터 톰 아놀드(Thomas Arnold)는 화가 김길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가 되는 일은 엄칭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요구한다. 최고의 작품,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는 감정을 쏟아 내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각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김길후 작가의 작품은 살아 숨 쉰다. 그의 작품은 영혼의 장소에서 출발하여 삶과 상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정직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김길후 작가는 진실의 추구선상에서 작품을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계속하여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줄 것이다.“
그림에, 또 화가에 익숙하지 않고 예술과 문화가 일상적이지 않아도 그것이 직업인 전문가 집단의 설명은 우리들로 하여금 문화와 예술에 한 걸음쯤 다가설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다소 길지만 김길후 선생의 그림과 그이의 작업에 관한 톰 아놀드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참고가 되었기를.
그의 그림은 2001년 시작된 <검은 눈물> 시리즈부터 2005년 <비밀의 화원> 최근의 칼 드로잉까지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검은 눈몰> 이전의 작품을 모두 태워 그의 초기 작품은 만나기가 어렵다. 왜 그랬을까?
"나이 40쯤 되니 지금처럼 그럭저럭 살아가면 나의 미래가 어떨지, 뻔히 보이더라구요. 어쩌면 병적으로 모은 16,000여 작품이 과연 소중한가? 하는 것에서부터 지금 여기서 뛰쳐나가지 못하고 미적거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럭저럭' 이라 했지만 그의 나날은 치열했다. 호구지책인 미술학원에 출근하면 끝없이 모여드는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한 켠에서 자품 활동을 계속했다. 일 년 가운데 설날과 추석 이틀만 빼고 작업하는 동안 사람들과의 인연은 끊어져도 쌓여기는 작품들로 충만했는데, 산고를 겪고 태어난 그것들이 불에 태워지고 연기로 사라지면서 화풍이 달라진다. 가전제품만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길후 선생의 화풍, 작품이 진화를 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낯섦을 경험할 수 있다. 검은색이 화폭을 지배한다. 그리고 흐린 날 구름 사이 햇살처럼 언뜻 언뜻 관능을 만날 수도 있다.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 곳곳에 백합 꽃이 묘사되어 있어요. 꽃을 좋아하시나요?
"어렸을 적부터 마당에 피어난 백합에 유독 정이 많이 갔어요. 꽃대가 바람에 흔들리면 그 자태는 여 인을 닮았고 향기는 사람을 위로하기도 해요. 꽃, 좋아합니다."
최근작 칼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바람의 느낌이 전 해진다. 단숨에 그어 내려간 바람 속에 오디세우스가 찾아가는 백합 닮은 페넬로페가 있다.
-작가가 검은 빛깔에 천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로 검은색이 주조를 이룹니다. 만족하시는지? 그리고 굳이 검은색, 또는 흑백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만족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검은색을 고집한 것이 아니었어요. 맘껏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빨, 주, 노, 초, 파, 남, 보 30여 가지 물감을 조금씩 짜서 쓰니 감질 나는 거지요. 그래서 까만색이라도 실컷 한 번 써보자 싶어 검은색을 선택했는데 물감이 비싸니까 먹물을 100통씩 샀지요. 그림을 모두 없앤 후라 겸은 색이라고 망설일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검은색은 지저분하고 그림 표현이 잘 안됩니다. 하지만 제대로 해놓으면 따라 하기 힘들죠. 저는 검은색에 올 인 했습니다.“
검은 빛깔 신비로움 그리고 살아서 전설이 되고 싶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외한인 필자가 생각해도 검은색은 그 모든 색을 뛰어 넘은 후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김길후 작가의 검은 색조는 매우 감각적이다. 그것은 별이 수 놓인 밤하늘의 어둠이며 깊은 밤의 그윽한 어둠이기도 하다. 그 어둠은 밤의 지평선 바로 너머 보이지 않는 사물들과 세상의 모든 신비로움이 존재하는 듯한 풍경....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어둠을 표현하면, 우리는 그 어둠을 향한 문을 열어 보고 싶어진다." 라고 했다.
이제 그의 작품을 한 번 볼 일이다. 이달 5월 11일부터 한 달간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대표화랑 갤러리 터치아트에서 작품전을 준비하고 있는 김길후 선생, 그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원만하겠지만 지금 바로 보성선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면 은 빚깔이 뿜어내는 독특한 화면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 소장되었느냐 하는 것에 예민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보성선원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의외였어요.
"저의 작품을 여러 곳에서 원했고, 또 지금도 원하고 있습니다만 보성선원의 제 작품은 가 있을 자리에 걸려 있는 겁니다." 그이 대답이 담백하다. 여러 문화인들과의 인연으로 보성선원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그는 주지 한북 스님과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부사 사람으로 나이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하고 풍기는 느낌도 비슷하고 해맑은 미소도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스님과 전생에 도반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화가 김길후. 그는 살아서 전설이 되고 싶다. 대구 보건대학 대구아트센터 인당박물관을 빛나게 한 그의 작품전도 역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준비한 그였기에 가능했고 그래서 전시회를 통해 주목을 받았던 것 아닐까. 영국을 현대미술의 중심국가로 만든 사치 갤리리로부터 영문 포트폴리오를 보내 달라는 요정을 받은 화가 김길후. 그의 꿈은 영국의 데이터 모던 갤러리에 작품을 거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미술의 변방 한국의 김길후 화가 작품이 100억 원을 호가하면 도시 중심에 젊은이들이 찾아드는 부처님 도량을 짓고 싶단다. 꿈은 꾸는 사람의 것이라 했다. 구도자 같은 삶을 사는 예술가, 김길후 선생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전쟁을 치르는 군인처럼 극한의 삶을 살 것 같다. 화실에서 함께 한 저녁 식사도 야전 막사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또 한 걸음 도약을 위해 독일행을 계획하는 그이에게 봄바람 닿은 순풍만 이어졌으면·········
<참조>
[공지]2011 깊고 깊은 어둠 Deepest Black - 김동기展 잡지 스크랩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Art in Culture
『 깊고 깊은 어둠 Doopest Black - 김길후展 』 Kim Gil Hu Solo Exhibition :: Painting
어두운 감수성을 화폭에 담아 온 화가 김길후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의 대표작 70여 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주로 검은색을 활용해 인간 마음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다. 그리고 캔버스에 칼이나 못, 스크래퍼 또는 그라인더와 같은 낯선 도구들을 이용해 캔버스에 흠집을 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유와 무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품은 크게
김길후 1961년 부산 출생. 계명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 갤러리아트싸이드 베이징(2010),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2008), 갤러리분도(2006)에서 개인전 및 베이징 쇼카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우봉미술관 등 국내외 전시 참가.
<전시 리뷰 수록>
<참조>
[공지]2011 김동기 화가 Art in culture 잡지 스크랩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