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04 김길후 단체전

 

2004 서울시립미술관 Life Landscape 단체전 

Life Landscape,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회화! 돌아오다 ● 이 전시는 그간 미디어, 영상, 개념, 설치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회화, 그 중에서 구상회화의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 한국의 추상회화가 국내외에서의 지속적인 전시를 통해 모노크롬이나 미니멀리즘과 같은 뚜렷한 양식으로 미술사의 한 조류로 자리잡은 반면, 상대적으로 구상회화에 대해서는 70년대 후반의 극사실주의, 80년대 비판적 리얼리즘 이후의 다양한 회화적 시각에 대한 접근이 미미할뿐 아니라, 그 접근에 있어서도 대부분 풍경, 정물, 인물과 같은 단순 도식의 전시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 이 전시는 90년대 이후 한국미술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장르로 인식되었던 구상회화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되, 전시구성에 있어 장르상의 구분이나 연대별 조망이라는 보편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구상회화를 『Life Landscape』라는 체로 걸러 냄으로써, 구체적인 시각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한국의 구상회화에 대한 발전적인 접근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기를 희망한다. 

 

 참여 작가 16인의 Life Landcape ● 이 전시는 여기 16명의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들의 초상에 대면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6명의 작가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미술평단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들중 몇몇이 젊은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90년대 이래 근 15년 가까이 포스트모던과 개념미술이 난무하던 한국미술계의 주류에서 비껴선, 나홀로 버텨온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만의 회화적 세계에서 구축해나가고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분방한 선과 살아있는 구체적인 형태와 붓 터치 그리고 원색의 생동감을 통해 구.상.회.화.의 시각적 매력을 독자적으로 터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혹은 미래의 한국 구상회화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그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작가들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 작가 김길후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지역미술계와 중앙 미술계 양쪽으로부터 감내해야만 했던 아웃 사이더로서의 분노를 200호가 넘는 블랙 페인팅 안으로 발산함으로써 김길후 예술가의 삶의 풍경을 관객들에게 전시한다. ■ 박파랑



 










  

<알바트로스>(2004)는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삶의 풍경-예술가의 초상>을 위해 그려진 작품이다. 이 전시는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를 공동분모로 하여 시에서 표현된 일상을 주제로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자기고백을 담은 구상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검은 눈물에서 비밀의 화원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인물의 손 위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또 다른 작품과 한 쌍으로, 그 인물의 양 손을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큐레이터 박파랑은 <알바트로스> 시리즈에 대해 지역미술계와 중앙미술계 양쪽으로부터 감내해야 했던 지방작가로서의 소위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이 커다란 검은 회화 안으로 발산된 것이라 평했다. 한편 김길후는 <사유하는 손> 등의 2010년 이후 시리즈에서 손과 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알바트로스>에서는 작가의 최근 작업 방향을 예고하듯 화대한 양 손이 캔버스들 가득 채운다. 이를 동해 "얼굴처럼 치장할 수도 없지만 진실하고 순수한 표정을 날 것으로 드러내는" 손의 표현력에 집중하고 있다.


 김길후(1961-)는 계명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1년 공산갤러리(대구), 2003년 (갤러리 M, 대구), 2005년 <비밀의 화원>(한가람미술관/관훈갤러리, 서울), 2006년 (갤러리 분도, 대구), 2010년 (갤러리 터치아트, 파주) 등 개인전을 개최했다. 주요 단체 전으로 2004년 <삶의 풍경(Life Landscape)>(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7년 <새로운 한국회화전>(전주문화예술회관, 전주), 2011년 (쇼카아트센터, 북경, 중국) 등이 있다.


김길후는 블랙 페인팅의 화가로 불린다. 검은색으로만 칠해진 그의 작품은 얼핏 보기엔 짓누르듯 무겁게 다가오지만 결코 체념과 상실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수용한다는 점에서 검은색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작업의 지향점을 "회망이 없는 곳에서 회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김길후의 작품은 크게 '검은 눈물', '비밀의 화원' 그리고 '갈 드로잉'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토마스 아놀드, Thomas Arnold, 뉴욕 메리분 갤러리 디렉터). 2001년부터 시작된 <검은 눈물>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종이를 여러 번 바르고 먹과 아크릴을 칠해 층을 만든 후, 못으로 긁고 망치로 두들겨 날카로운 선을 그어 드로잉하듯 그린 그림이다. 2004년부터 제작된 비밀의 화원 연작에서는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성장기의 욕망이 드러난다. 특히 꽃(백합)의 표현이 부각되고 빛바랜 색조를 통해 화면에 활력을 부여한다. 2008년 칼 드로잉 연작에서 작가는 붓 대신 칼을 사용하여 형상을 표현한다. 종이를 캔버스에 배접한 후 표면에 색을 얇게 칠한 다음 칼로 그어 오려내 밑바탕의 흰 종이를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보다 세밀한 선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참고>

SeMA - 전시 상세 (seoul.go.kr) / ■ 네오룩_www.NEOLOOK.com

 



 -상투성(常套性)과 싸우며형상을 찾는 회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법 규모가 있는 전시회들의 최근 경향을 보면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조류는 보편적인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점점 더 개인의 표현이 증가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방법적이거나 형식적인 면에서 조형언어의 확대라는 문제를 고심하던 현대미술을 두고 소통의 한계를 거론하던 것도 이제 옛일이 된 것 같다개인사나 가족사 또는 사회나 국가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현대문명과 문화에 대해서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관객과 만나려고 하는 작품이 훨씬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는 때에 미술의 소통의 문제도 좀 다른 차원에서 얘기되어야 할 것이다옛 전통에만 익숙한 관객들이거나조형 예술의 다양한 매체에 전혀 정보가 없거나 미술문화에 아주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면 여전히 현대미술이 낯설고 생경하다 못 해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사물로가지 비쳐지지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이제는 관객들도 조형예술작품이 반드시 구상적인 도상으로 이루어진 설명 가능한 형식이 아니란 사실에 어느 정도 익숙하며 그 의미나 지시가 즉석에서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을 만큼 현대미술의 역사가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그러나 현대미술이 얼마나 어떻게 잘 전달될 수 있느냐으 문제는 해소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정이 달라졌을 뿐이다우선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이념의 변화와 함께 작품에서 개인의 표현이 증가하고부터 작가 개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야기가 많아지기 때문에 관객은 공감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무슨 마이든 일단 들어 볼 수는 있게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현대미술의 주류는 작품의 메시지가 강조되어 결국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높아져 간다는 것인데이것은 표현의 기술보다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는 개념예술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이런 주제들은 대개 삶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조형예술의 순수성을 위해 서사성을 배제시켜왔던 근대미술의 궤적을 상기하면 이미 현대미술은 그 역방향을 달리고 있다특히 이미지 그 자체의 중요성에 주목해왔던 근대미술의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도표현의 확대란 측면에서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회화예술의 독자적인 미학으로부터 무관한 듯한 새로운 영역들을 끝없이 개척해왔고이제는 호화 예술의 배타적인 장르적 특징을 유지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혹은 지켜질 수 있는 순수성이나 정체성의 혼란마저 야기해 결국 회화의 죽음까지도 얘기되는 상황이 되었다.

 

 설치나 영상작업 같은 최근의 진보적인 작품들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매체 선택에서 적절성이 강조되고 그것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적 장악 능력도 크게 요구되고 있다더 이상 화가에게 요구되던 전통적인 기술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그것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신 소재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운용하는 기술적 전문성이 더 필요하게 된다면 이제 조형예술이 가지고 있던 다른 장르와의 차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현대인들이 컴퓨터의 복잡한 구조나 원리를 이해함이 없이 그 메시지만 읽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하면 여기서도 조형예술이 가지고 있던 독자적인 미적 특성이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다시 회화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물음들이 일어난다그래서 이 즈음에 와서 회화의 형상적 이미지와 메시지의 전통적인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미술은 원래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이미지 그 자체의 특성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기도 하다이미지는 구상적 형태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색채에 의해서도 단지 필획에 의해서도 무형의 추상적 이미지가 형성되고 거기에도 표현이 담기게 돈다그렇지만 주제로서의 메시지와 이미지 그 자체로서의 특성에 다 같이 형상적 이미지의 상투성과 싸우면서 자신의 주제를 파고드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해서여전히 회화 예술에서 이미지의 힘과 매력을 느껴보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종이와 연필물감과 캔버스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실험하고 있는 새로운 예술에 동원되는 신소재와 기계적 장치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전통적인 매체에 대한 매력과 기대도 더 크게 일어난다이번 전시는 그렇게 이미지를 가지고평면 위에서상투성과 싸우면서 자신의 주제를 탐구하는 작가들의 지난한 싸움들의 자취를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영 동 (우봉미술관 이전 개관 기획전 초대작가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