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16 포항시립미술관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 개인전 ②

 

 촉감적인 살의 언어에 대해서

 

 과잉의 이미지들이 넘치는 시대지만 격렬한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다. 그만큼 우리 시대가 보이기에 매달려 있거나 그것에 매료되어 있다는 증좌다. 볼거리는 풍성한데 그 안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고 때로는 이런 시류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무익한 것으로 여기게 하거나 기피하게 한다. 삶의 다양성은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지만 그 결이 얇다는 지적은 이련 현상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류에서 김길후의 작업은 단연 독특한 만남을 준다. 색상과 형상과 질감으로 요약되는 그의 작업은 어떤 상상보다 먼저 색채가 던지는 노골적인 제시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 색상을 받치고 있는 질감의 두터움, 미끄러움, 그리고 거칠고 섬약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 양면성 사이로 선명하게 때로는 불확실하게 떠오르는 인물의 모습은 서서히 자신의 형상을 드러내면서 형상 너머의 어떤 만남을 예비한다. 그리고 보는 이에게 내면의 낯섦 혹은 너무나 익숙한 어떤 측면을 밀어 올라오게 한다. 그의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추동하고 있는 소재인 얼굴을 직면하게 한다. 직면이라는 말은 얼굴 외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다. 그저 커다란 얼굴일 뿐이다. 심지어 육십갑자(六十甲子)라는 제목이 붙은 인물들의 표정조차 60명의 얼굴이 아니라 한 얼굴을 변주한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표정 자체를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급박한 필촉의 흔적들과 그 아래로 켜를 지닌 물감들의 물질성을 만나게 할 뿐이다. 그저 이래도 내가 제시하는 얼굴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는 투로 얼굴을 들입다 내미는 형용이다.

 

 하필이면 표정 없는 얼굴일까. 그런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표정을 묘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특정 개인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개인적 묘사가 아니면서 수없이 많은 얼굴을 그리고 그런 소재와 내용에 적잖은 시간을 천착한 연유이다. 그렇게 해서 생성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표정은 인간 개별성의 속성이고 그 개별성의 드러냄을 통해 다름을 보아내고 서로 소통한다. 그것이 세계를 이룬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개인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표정이 없다. 아니 표정이 없기보다 개별적인 표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특징 역시 개별적인 삶의 구성이나 서사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도리어 다양한 인물, 한 세대를 돌아가는 육십갑자의 인물상에 대한 관심조차 개별적인 인물이기보다 인물 자체, 인간 자체, 얼굴이라는 그것을 보이고자 한다. 특정 개인의 삶을 들어다보는 표정과 그 표정이 만드는 서사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질감으로 다가오는 얼굴의 형상은 삶의 원천, 서사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개별성을 읽게 하고 얼굴이라는 친근하고 익숙한 직접화법을 제공하면서 개별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건으로서 삶을 읽을 수 있는 서사가 아니라 촉감이라는 지각으로써 얼굴을 조우하게 한다. 그가 보아내려는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얼굴이라는 것, 얼굴을 이루고 있는 물질, 얼굴이라는 인체를 직접적 촉감으로 만나려는 것이다. 그곳에는 물질로서 얼굴, 색감으로서 물질, 이미 알고 있는 얼굴, 표정, 인물이 아니라 너라고 말할 수 없는 너와 나, 세계와 주체가 하나로 얽혀있는 지점이 있을 뿐이다.

 

 그의 얼굴은 대부분 격렬한 표정을 읽게 하고 만나게 한다. 아니 읽어서 이해하기보다는 손끝에 묻어날 것 같은 촉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표정은 하나의 얼굴을 보이지만 그 얼굴이 던지는 이미지는 격렬함에 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격렬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격렬함이 타인들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의 얼굴이라면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얼굴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격렬함은 자신의 의지와 자신이 세계와 만나는 날 것으로서 어떤 것이 아닐까. 날 것의 격렬함이 타인에게로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열려있으며 자신에게로 향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운명에 대한 질문과 만남은 아닐까. 그것이 개인의 문제에서 너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증식되는 지향의 힘이 그의 얼굴인 것일까. 사실 그의 얼굴은 인체의 한 부분으로서 얼굴이 아니며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가장 민감한 외부로서 살이다. 세계와 만나는 접촉점이자 세계이자 자신이며 자신이자 타인인 것이다. 그것은 메를로 퐁티의 지향, 몸의 언어, 살의 존재론으로서 세계를 엿보게 한다.

 

 깍지 낀 손이 커다란 얼굴 하나를 눌러놓고 있다. 아니 머리 하나가 깍지 낀 손 위에 기대고 있다. 그저 손을 깍지 끼고 그 위에 얼굴을 대고 있지만 그 모양은 로맨틱하지도 사유의 흔적을 보이는 고상함도 애틋함도 없다. 사연을 읽을 만한 어떤 내용이나 우회의 변죽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놓여 있다. 흔하고 흔한 도상이다. 어떤 새로움도 없는 제스처이고 소재이다. 그런데 그의 작업은 이쯤에서 물러나지 않고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뻔한 사실에 대한 새로운 읽기에 가깝다. 두터운 색료들의 느낌은 대상을 묘사하거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한 색상이기보다 하나의 물질감으로 대상을 감싸고 있을 뿐, 섬세한 묘사는커녕 기본적인 인상마저 상투적인 제시로 전이시킨다. 다른 작품에서도 얼굴로 묘사된 대상들의 표정이나 제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 그리고 얼굴에 집착하고 있으면서 그 얼굴에는 어떤 내용도 없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표정이 없다는 점에서 그가 제시하는 얼굴은 개별적인 삶의 구체성을 담은 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상투적이고 도식적이라는 면에서 기념비적인 인상이 강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검은 색상에 거친 선들이 둘러싸고, 묘사된 손은 손등을 감싸고 있는 인대의 표현에서 더욱 강조되고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간신히 심리적인 정황을 읽게 한다. 겨우 드러나는 것이 얼굴이고 손이듯, 가끔 전신이 묘사되고 발이 드러날 경우도 대부분 웅크리고 앉았거나 누운 자세로 발과 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포즈는 노골적인 반복과 비슷한 인상 때문에 우울한 내면을 상징하지만 다른 의미들로 읽히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지점에서 그의 얼굴은 다른 세계,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비집고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간다. 그것은 형상을 싸고 있는 거친 마티엘에 대한 지각이다. 대상을 뒤덮고 있는 물질은 하나의 질감으로 다가오고 그 질감의 느낌이 그 질감 스스로, 물질 스스로, 대상을 묘사한 색료가 아니라 물질로서 물감 스스로가 일어나는 감도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질을 타고 일어나는 감성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주는 독특한 감도이고 그의 감수성과의 만남이다.

 

 질감이 주는 물질감은 대상의 묘사나 재현의 행위가 아니라 작가의 몸이 만드는 제스처이며 작가의 스타일이자 정신이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형식적 실험이기보다 세계를 만나는 자신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우리 몸을 가장 원초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이다. 선조의 날카롭고 직정적인 느낌은 질감과 함께 대상의 포즈가 작가의 제스처임을 보여준다. 이런 해독의 순간에 우리는 작가의 제스처가 바로 형식이며 내용의 요소임을 알게 된다. 어떤 선재된 내용도, 대상에 대한 이해도 요구하지 않은 채 몸 그 자체를 촉감하고 직시하게 한다. “우리 몸의 가장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제스처도 행위라는 기호 속에 이미 세상에 대한 주체의 실존적 태도를 암시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자발적인 언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언어란 몸의 표현적인 현상임을 유추 할 수 있다. 그의 인물은 개별 인물이 가진 구체적인 삶의 양상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내면에 대한 집요한 추구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다분히 관념적인 접근이라는 혐의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인물, 얼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업들은 그 형상이 거의 유사하고 얼굴간의 변별이랄 수 있는 특징이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같은 도상을 반복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실제적 삶에서 얼굴을 읽어내는 다양성이 아니라 그것들을 아우르는 관념적 이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일견되는 그의 작업이 하나의 도상, 하나의 소재, 하나의 색채, 거의 유사한 작업방법들로 읽혀진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삶의 다양한 양상과 곡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도리어 그 다양한 삶의 서사 사이에서 인간 자체를 보아낼 수 있는 어떤 것, 인간 자체를 감촉할 수 있는 지각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중요해 보인다. 서사가 아닌 인간이란 바로 주체가 세계와 만나는 그 자체에 다르지 않으며, 내가 너를, 우리가 세계를, 정신이 물질을 그림이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원천적인 언어에 대한 관심이자 그것으로서 인간과 세계를 보아내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길후의 작업은 대상을 묘사하거나 서사를 재현하거나 이미 있는 사유를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장소에서, 내가 보는 이 물질의 덩어리를 인물로 상정하는 순간 요동치는 내면의 격렬함의 체험, 처음으로 만나는 내면을 촉감으로 조우하는 것이다. 그것은 규범화된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것들에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처음 보듯 선입견 없이 그러나 자신의 주관과 무관하지 않게 만나는 비규범적 이해인 것이다. 말의 매개가 아니라 촉감이라는 몸의 언어로, 살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나는 세계이다. 몸은 이 작업, 욕망을 가장 원초적으로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몸의 현전은 모든 의미들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면서 말로 이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롤을 구성하는 의미는 실존적인 제스처의 의미에서 파생된다는 것이다.” 그의 몸, 얼굴은 이미 존재하는 사유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의 도상성은 표정을 통해 읽어내는 다양함의 기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변별되는 개성의 문제를 차단해버리고 배신한다. 뻔한 것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상투적인 형상을 통해 어떤 현학적 사유도 개입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상투성이 부정되는 순간 조우하게 되는 직접성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그의 단순성, 검은 색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근래 부각되는 물질성에서 관심은 바로 여기 까닭은 두고 있다.

 

 손끝이 뭉툭하게 닳아버린 손 뒤로 얼굴을 묻고, 때로는 거친 손마디 사이로 기다란 손톱을 내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얼굴의 표정보다 몸의 표정을 보라는 듯이 강요하는 것이다. 손이나 발이 몸의 포즈를 더 잘 말해주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작가의 제스처이며 그 제스처란 다름 아니라 의미의 발생이라는 것이다. , 그것이 보내는 말이자 의미인 것이다. “스타일은 제스처와 분리되지 않으며, 소재를 선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윤곽선의 각 점들을 예리하게 꾹꾹 누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종이 위에 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든, 분필을 가지고 칠판 위에 팔 전체를 움직여 쓰든, 우리는 자신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필촉이 우리 몸속의 어떤 근육과 연결되어 물리적으로 제한된 운동을 완수하듯 예정되어 있는 기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스타일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전이가 가능한 형식화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친 선들이 주는 선병질적인 인상이나 인물의 외부를 감싸고 있으면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외부가 내부에 반응하는 것이 얼굴이자 제스처이며 스타일이다.

 

 손가락 뒤로 가려진 얼굴은 자신을 자신이 만지는 촉감으로 자신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촉감 때문에 자신을 타자와 주체로 이해하는, 자신을 자신의 기념비로 내세우는 우울한 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초상은 어떤 개인도 아니다. 그것은 물질이 곧 정신임을 보여줄 뿐이다. 물질이 정신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큰 두상, 과도하게 얼굴과 손에만 집중하고 있는 형상들은 몸으로부터 벗어난 몸이자 물질감으로 만나는 정신이다. 관념적인 이해는 이런 정황에 의해 섬세하게 개별적인 만남으로 제시된다. 보는 이의 보는 방법이자 보이게 하는 세계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언어가 사유를 복사하지 않고 존재의 발원적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언어가 이미 사용된 것을 경험적 소재로 만족하지 말아야 하므로, 언어의 진정한 사용은 침묵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서사의 대용이 아니고 특정 서사를 복사하듯 재현하지도 않는다. 인물이기조차 거부하면서 인물이 물질임을, 물질의 촉감을 통해 인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그것은 몸의 제스처가 바로 언어임을 보이는 것이며, 규범화되지 않은 형상을 통해 말하는 것, 즉 침묵을 통해 드러내려는 것이다.

 

 “화가의 스타일은 화가의 삶의 스타일이 아니고 그 스타일이 삶을 표현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의 삶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그의 작업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업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세계를 만나고 자신을 그렇게 이끄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한 자신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표현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칠고 촉감적인 특징에서 기인하는 김길후의 독특한 조형어법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가 소재에 반응하고 응답한 형태이다. 스타일이 곧 제스처라면, 그의 제스처는 그가 그린 형상들이 미완성일 것이며 그 스타일은 다름 아니라 그 반응을 기조로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작업은 반응이자 응답이며 그리기이자 지우기이고 보기이자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매료되는 것도 실은 이런 순간의 만남이 주는 생경함에 다르지 않다. 그 생경함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만나는 순간이자 세계가 우리를 만나는 몸의 반응이다.

 

 “세계정신은, 우리가 움직이고 응시할 줄 아는 바로 그 순간의 우리 자신이다라고 하지 않은가.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것은 어떤 대상으로 확인하거나 재현의 쾌를 보아내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재현을 벗어나는, 규범이나 이해의 정도를 벗어나는 순간일 것이며 그 순간이 비로소 보는 이와 그리는 이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지점은 자아와 타자가 만나는 지점으로서 표면이자 살이며 바깥이자 안이며 물질이자 정신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것을 응시하는 자신이 바로 자신이며 세계정신으로서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표현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자신이 세계와 만나는 지점을 확보하는 지각에 다르지 않다. 지각이란 다름 아니라 몸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표현의 제스처는 스스로 묘사하고 자기가 지향하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임무를 띠고 있어서 세계를 회복시킨다고 한다. 김길후의 제스처는 다름 아니라 직정적인 붓질이며 그렇게 표현하게 되는 스타일이다. 그 직관의 순간에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밖으로 이끌어내야 함으로 묘사의 시간, 찬찬이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날 것의 느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표현은 우리가 감추고 있었던 어떤 것, 무의식 혹은 잠재된 욕망들, 억압된 욕망들에서 일탈한 자신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의 거침, 직정적인 선묘와 색채, 단순하고 노골적인 얼굴을 제시하는 까닭이 거기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묘사이기보다 제스처이며 질감이며 촉감으로 다가오고 다가가는 순간이다. 물질적인 노골성과 촉감적인 몸의 지향이 주는 존재의 생경한 만남이 그의 작품이다.

 

 몇 작품에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을 목격할 수 있다. 남자이자 여자이며 한 사람이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백합 밭의 한 소년이 자신의 몸을 백합에 빗대어 보아내듯이 그 자신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고기의 형용을 눈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 고기의 눈은 만개하지 않은 백합의 꽃봉오리와 유사하고 그렇게 둘이 서로 보고 보인다. 만개하지 않은 것은 미성숙이자 미완이며 진행 중인 것이다. 그 꽃밭의 소년 역시 미완이자 미성숙이지만 세계를 보아내려는 충동을 세계의 순환으로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촉감으로 만나는 것이다. 꽃과 물고기와 소년, 그리고 사춘기는 이해가 아니라 그저 촉감할 뿐인 세계이다. 그것은 너와 내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며, 질감이 주는 현실감과 촉감이야말로 세계이며 자신의 제스처이자 스타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을 조르듯 칭칭 감고 있는 손과 발이야말로 촉감으로 자신을 느끼고 자신을 타자화 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그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 살이 바깥의 세계와 만나게 하지만 그것은 안쪽도 바깥쪽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 안과 밖도 아니고 그 경계도 아닌, 내면도 몸도 아니고 물질도 정신도 아닌 세계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물질이 곧 제스처이자 스타일이다. 정신이자 의미가 생성되는 촉감의 순간이다. 촉감적인 살의 지각을 그는 말하고 느끼며, 우리는 느끼고 말한다. 날 것에 대해서

2016 포항시립미술관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 개인전 평론

 

On the language of Tactile Flesh

 

 Despite the plethora of images available in this era it is rare to find works that display one's vehement inner world. This demonstrates how our society is dependent on and riveted by the act of expression. While there is much to see there is no opportunity to look into this. This trend leads us think that looking into the inner aspect is a futile act and we thus evade it. This is in the same context that life is diverse yet less serious. In this respect, Kim Gil-hu's art is particularly unique. In his works summarized with color, form, and texture an unconcealed presentation of color catches our attention before his imagination does. His works are particularly marked by the ambiguity between thick and sleek textures and rough and feeble qualities. A figure that clearly or unclearly emerges from such duality holds back from an encounter, gradually revealing his own image. This reminds viewers of an inner aspect that is either so unfamiliar or familiar to them. This also makes viewers confront the face, the subject matter dominating his oeuvre. The term "confront" here means not allowing the viewers to divert their eyes. The face appears expressionless and is nothing but a huge face. The faces of the figures in his work titled The Chinese Sexagenary Cycle are not representations of the faces of sixty people but rather just variations of the same face with no expression. In this way he did not depict any type of expression. He allows viewers to encounter the traces of urgent brushstrokes and the corporeality of paints in layers. This is a way of presenting such faces as if not allowing us to avoid them.

 

 Why does Kim portray deadpan faces? We can assume that his intention was to not depict any specific individual with his expressionless faces. The real question revolves around why he has portrayed countless faces and spent so much time exploring such subject matter and content. What message is generated in doing so? One's appearance represents his or her individuality and we communicate with each other by disclosing our individuality and differences. This is what forms the world, after all. His faces are either expressionless or he just did not depict each individual's expression. His oeuvre is also not characterized by any individual life or narratives. Rather, he has interest in a figure or the face itself, not in each individual. He rejects a specific individual's appearance and the narratives that stem from it. The images of such faces enable us to read into each person's individuality as the source of life and other narratives while refusing individuality itself through an immediate statement using faces. This enables us to encounter the face through the sense of touch as opposed to a narrative as an event in life. While he does not intend to see any specific figure, he wants to meet part of the human body or the face through such a direct sense of touch. What is there is only a place where you who cannot say you are you and I as well as the world and the subject are intertwined, not the face as matter, matter as a color sense, the face we have already known, nor appearances or figures.

 

 His faces allow us to encounter intense expressions which are felt by the tactile sense rather than being grasped by our visual perception. The images of his faces only appear violent. What is the identity of such violent expressions? If such faces are not those of others but are actually the same face, perhaps it is that of the artist's. Such vehemence may be something raw through which the artist himself or his will encounters the world. If this vehemence is directed towards himself, not others, perhaps it concerns his identity or destiny. His faces probably display a force of orientation from an individual's problem to "your problem or "our" problem. The face he portrays is not a face as in a component of the body but flesh as the most sensitive external surface which we come across in the world. The face is a contact point, the world, the artist himself, or the other. This hints at Maurice Merleau-Ponty' s orientation, the speaking body, and the world as the ontology of life.

 

 A large face rests on clasped hands. The individual with his fingers laced together does not look romantic nor does he display any sign of loftiness or traces of thought. There is also no sign of a story, content, or an implication. The figure is just lying h such a way. This is a very common image, gesture and subject matter in which there is nothing new however his work does not end here. It provokes something. This approximates a new reading of an obvious fact. Thick paints are not used for depicting objects nor for effective expression but rather just enwrap objects with matterness, converting elemental impressions into conventional manifestations. The faces and expressions in other works are not so different.

 

 While he sticks to figures and faces, the faces carry no meaning. As mentioned above, the faces he presents are obviously not a representation of individuals and their concrete lives in that they appear expressionless. They look monumental in that they are stereotypical and schematic. These faces are encircled with rough lines in black and the illustrated hands are further emphasized and more acutely revealed by the portrayal of ligaments on their surfaces. We can hardly analyze the psychological state in this depiction, Faces, hands, and an individual who appears either crouched or lying down in works featuring the whole body are just barely made out. The legs and hands are what stand out in these works.

 

 This pose represents a gloomy inner self through its blatant repetition and similar impressions and does not convey any other con- notations. Strangely however, Kim's faces lead us to another world or place, going through that which we are familiar with. That is one such impression one can get from images enveloped in rough matiere. The material covering an object displays texture and its sensation derives from the object as a pigment. His works are particularly marked by the emotions that stem from matter and sensibility.

 

 The material quality of texture is not an act of depiction or representation but his gesture, style, or spirit. This style is his own idiom to interact with the world rather than any formal experiment. He meets the body in this style. The keen, intuitive feeling of line delineation shows that the pose of his object is his own gesture. At this moment of deciphering, we realize that his gesture is b form and content. It makes us feel and face the body itself, not asking for any understanding of the object. Maurice Marty asserts that our bodies most primal, trifling gestures are spontaneous words suggestive of the subject’s existential attitude toward the world. We are able to inter that language is an expressive phenomenon of the body. His figure is not a representation of aspects of each individual's life but a persistent pursuit of the inner self. In this respect, his figures or faces look almost identical, showing no distinction. A repetition of the same image can be regarded as the result of his ideal understanding, not the result of seeking diversity. that he does not pursue diverse aspects of life.

 

 The fact that his work can be read with one image, one subject matter, one color, and almost identical work method is a clarification that he does not pursue diverse aspects of life. An interest in something through which he can see humans between the diverse narratives of life is important to him. This is his interest in the elemental language that links you to me, humans to the world, spirit to matter, and painting to the world. In this respect, Kim's work does not to depict objects, represent narratives, or emulate some thought. His work seeks to experience internal vehement and the inner self through a sense of touch. That is neither to seek any normative understanding nor to be familiarized with something preexisting. This is an understanding that has nothing to do with his subjectivity. It is like seeing the world for the first time without any prejudice. This is the world we come across by the medium of the body language of the tactile sense of the flesh, not words. Maurice Merleau-Ponty states that “the meaning of forming parole derives from existential gestures as the presence of the body in the world has the ability to connect all meanings with words in a structure.” The bodies or faces he portrays are not the traces of his thinking. They are rather to reject this. His iconicity interrupts and betrays our expectation for diversity, newness, and individuality. They drive us to something obvious. He does not allow any pedantic thought to be involved through conventional images and opens up the world of immediacy. His obsession with simplicity and black color and his recent interest in corporeality derives from this.

 

 Works featuring a face buried behind roughly worn-out hands and the long nails among coarse fingers force us to see bodily looks rather than facial looks. Hand and legs are more proper in expressing the body's language. They are the artist's gestures engendering meaning. They are the words and meanings the body conveys. “The style is undivided in one's gesture and does not need to lean heavily upon each point of the tracing in order to mark the material with its stripe. Our handwriting is recognized whether we trace letters on paper with three fingers of our hand or in chalk on the blackboard at arm's length: for it is not a purely mechanical movement of our body which is tied to certain muscles and destined to accomplish certain materially defined movements, but a general motor power of formulation capable of the transpositions which constitute the constancy of style.” His faces, gestures, and styles enwrap some nervous impression evoked by his rough lines and the outer side of a figure while reacting to the inner side.

 

 The face hidden behind fingers elementally confirms its experience with its own tactile sense. The artist showcases a gloomy portrait that sees itself as the other and the subject due to its tactile sense and presents itself as a monument. But the portrait is not one of an individual. This shows that matter is none other than spirit. This means the spirit is activated by material. Overly large hands and forms concentrating excessively on faces and hands are parts of the body escaping from the body and the spirit we meet through corporeality. Any abstract understanding is presented as a delicate, individual encounter by this circumstance. This discloses the way of viewers and the duplicity of the world.

 

 Maurice Merleau-Ponty also argues that "We have to make language reveal the elemental meaning of existence without copying thought. This means the true use of language cannot help but being silent because we must not use what language has been already used as an empirical motif.“

 

 Kim's figures thus do not represent any specific narrative as if copying it. Kim arranges a meeting with figures through the tac- tile sense of material, claiming that those figures are also materials. That is to show that the body's gesture is language, to speak through non-normative forms, and reveal through silence.

 

 "The painter's style is not the style of his life, but he draws his life also toward expression." It is not the fact that his life makes him express in this way and his work makes us feel in this way. When seeing his work, we meet the world and lead ourselves in this way, encountering with ourselves innate in our inner world. That is Kim's distinctive modeling language stemming from rough, tactile features. His work is not an outgrowth but a mode in which he reacts and responds to subject matter. If a style is a gesture, his gesture is an incomplete image he portrays and his style is based on this response. His work is both reaction and response, drawing and erasing, and seeing and being seen. We are fascinated by strangeness at a momentous encounter. This strangeness is the moment we meet the world and our bodies' reaction when the world meets us.

 

 It is often said that "The World Spirit is ourselves at the moment we are able to move and glance. " What we come across in his work is a lack of representation: it is not an encounter of any pleasure of representation. This is rather the moment doing on any representation or comprehension, and this moment is the post where one who views meets one who parts. The post is the surface or the flesh where the self meets the other as well as where the exterior meets the interior and the material meets the spirit. He gazes at himself as the world spirit. Any expression is not to represent some object but to disclose himself as well as to per the post where he comes across the world. Such a perception is none other than the body. "So much the more does the gesture of expression, which undertakes to delineate what it intends and make it appear outside, retrieve the world? Kim’s gesture is violent brushwork as well as a style to express in this way. It is to elicit the sensation of "the raw, not to observe and depict objects closely and slowly. This expression is to recover the artist himself oppressed by something he has concealed, unconsciousness, subconscious desire, and suppressed desire. That's why he employs coarse, intuitive, and passionate line delineations and colors and presents succinct, obvious faces. It is not a depiction but a gesture and the moment he approaches with texture and tactile sense His work is an awkward encounter of existence through material obviousness and tactile bodies.

 

 A few of his works feature a figure with two faces. The figure shows a man's and woman's face or one and the other's face. As a body likens his body to a lily, the boy's eye is replaced with the eye of a fish. The eye of a fish is analogous to a lily's boud and the two are facing each other. What's not in full bloom is immature, incomplete, and ongoing. The boy in a flower garden faces his impulse that is incomplete and immature but aspires to see the cycle of the world. The boy meets the world with his tactile sense not comprehension, while feeling it with his body. Flower, fish, boy, and adolescence are the world sensed only through the tactile sense. A sense of reality deriving from texture and a sense of touch is the world demonstrating his gesture and style.

 

 The hand and leg wound, as if squeezing one's throat, may be the post where one feels their self. His work mentions that the flesh is neither internal nor external while it allows us to experience the world. His work is neither interior nor exterior, that post nor the border, matter nor spirit. It is either a gesture or a style as the moment of tactile sense at which its spirit and meaning arise. He speaks and feels the perception of tactile life whereas we feel and talk about "the raw.“

 

By Kang Sun-hak, Art Ci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