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2017 김길후 개인전 |
2017 ASSISI MINI GALLERY 1000 FACE DELLA LUNA
천개의 달
천개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 검거나 전부 하얀 것이다. 검게 웃거나 하얗게 웃거나. 흰 새가 되거나 검은 새가 되거나. 검은색은 하얀 것이고 흰색은 검은 것이다. 하얀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이름 없던 그것의 삼중주. 이 모든 것들은 달이 되었다. 검은 것을 품으면서 흰 것이 된 달. 천개의 달이 나타났다. 세상의 허물을 다 삭제하지만 그리고 비우지만 또 다시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천개의 달은 세계의 삼중주이다. 공간이 사라진 오직 시간만이 웃고 있는 곳, 그 천개의 달이 비추는 시간의 장소.
시간만이 머물 수 있는 곳, 그곳은 아프다. 날카롭다. 통증이 시작되는 곳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전진한다. 그저 나아간다. 아슬아슬하게. 그것은 의지를 버려야 되는 곳이다. 인간을 폐기하기. 그러나 그 위태로운 순간. 세상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불투명하지만 투명하게, 불명확하지만 명확하게. 그렇게 너무나 비좁고 여윈 곳이지만, 그렇지만 그곳은 따뜻하다. 아프지만 따뜻한 곳이다. 갓 태어난 것들이 머무는 곳이다. 막 서리가 내린 초겨울 같은 곳. 그 터에서 아직 이름을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막 일어서고 있다. 누가 이 풍광과 함께 할 것인가. 그는 누구인가? 그는 어둠 속에서 흰 것이다. 흰 달. 이미 지난 과거와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언제나 사유하는 사람. 지나가는 이 순간을 해독하는 사람. 세상을 갑자기 차갑고 빛나게 만드는 이. 느리게 느리게 마지막으로 추락하는 세상의 불균등한 것들을 긍정하는 사람.
불균등한 것들, 이 속에서 새로움은 탄생한다. 불균등한 것들이 전개하는 단절과 통섭의 이중주. 이편의 검은 것과 저편의 흰 것을 연결시키는 그는 흰 달과 같은 사람, 천개의 달은 품은 사람.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서성이며 지옥 같은 이편을 사랑한다. 다른 것들의 얼굴을 보장하는, 증명하는 최소한의 가능성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모든 가능성들을 타인들에게 부여하는 사람. 불가능성과 가능성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사람. 풀과 먼지와 문 밑을 비추는 햇빛, 그들의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처음으로 이 세상에 찬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생명의 입김.
생명은 천개의 달로부터 태어난다. 연약하지만 황홀한 것, 말할 힘도 없지만 외마디 외침속에서 생명은 그 본색을 드러낸다. 검은 무바탕에서 흰 생명이 출현한다. 여름날 자작나무 숲의 흰 그림자. 그 자작나무의 생명은 갈대숲의 검은색을 지향한다. 그리고 검은 색의 늪가로 간다. 늪가의 야생오리가 그를 반길 것이다. 야생오리는 누군가를 매혹하리라. 그리고 누군가는 돌을 던질 것이리라. 그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은 희게 된다. 천개의 달이 된다. 천개의 달은 나이자 타자이다. 우리다. 잔혹함과 슬픔과 더러움을 생명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천개의 달은 백지위의 선과 같이 생명의 선을 나타낸다. 그 선에서 무수한 점들이 태어난다. 점들이 방사된다. 무수한 이름의 점들이 얇고 투명한 연초록 잎 새의 하얀 뒷면을 수놓는다. 그 잎 새는 흰 어촌이 되고 흰 도시가 될 것이다. 흰 빛의 섬과 흰 마을이 될 것이다. 내가 흰 달이 되어 어느새 천개의 달이 될 때 그대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하얗게 나를 맞을 것이리라. 천개의 검은 섬과 천개의 은빛 달이 서로를 비추고 서로를 진동시키고, 서로의 호흡을 공유한다.
검은 것과 흰 것의 영원히 지나간, 지나가게 될 노래.
2016. 12. 김 길후.
2017 천개(天開)의 빛, KUNST Gallery, Seoul, Korea
세상을 밝히는 '천개(天開)의 빛'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늘은 닫혀있었다. 닫힌 하늘. 움직임을 상실한 하늘. 그 움직임의 상실은 인간이 가져온 것이다. 서로 조응하고 반응하고 대립하고 제한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의식, 그 의식이 초래한 것이다. 인간의 색이 넘치고 있다. 의식이 인도한 인간의 색. 이 초라한 인간의 색을 삭제하자 그리고 자연의 빛을 가지고 오자. 인간의 죽음을 도출하는 자연의 빛. 이 자연의 빛은 사물의 빛이다. 사물이자 인간인 생명의 빛. 생명의 에너지. 이 에너지가 하늘을 열고 있다. 하늘을 여는, 하늘을 움직이게 하는 사물의 빛. 이 빛이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다. 인간이 다시 태어날 때 하늘은 열리고 인간과 하늘 사물은 동일한 위치에서 서성일 것이다. 사물의 빛이 도래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을 삭제하라. 사물을 빛이 세상의 앞과 뒤를 관통한다. 인간은 서로 융합하고 상승하고 개방시키고 감응한다. 사물의 빛이 인간을 스며들고 있다.
김길후 작가는 2000년 『Black Paper』를 시작으로 ‘어둠’을 그렸다. 『Black Tears』(00-03)와 『Secret Garden』(04-09)을 거쳐 개인이 가진 고독, 우울, 슬픔, 도피, 향수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을 표현했다.
10년 후, 그는 내면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어둠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게 한다. 어둠을 밝히는 아련한 빛은 『달의 현자』로 나타났다. 김길후 작가는 2010년 처음으로 『달의 현자』 시리즈를 세상에 발표했다. 그 이후 김길후 작가는 베이징 화이트박스미술관(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 대구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개인전), 서울 간송미술관, 그리고 타이페이, 이탈리아와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달의 현자』를 선보였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처럼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한 존재로서 김길후 작가는 현대사회에 현자를 제시했다.
어둠 속의 빛을 그리던 김길후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빛’ 그 자체를 만난다. 이탈리아의 자연은 김길후 작가에게 과거 ‘빛’에 매료된 인상주의 화가들의 행보를 공감하게 만들었다. 2017년, 그는 빛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미처 알지 못한 채 남겨진 상흔으로 은밀히 자리하여 번져간다. 단조롭지만 우아하게, 강렬하고 직설적으로 어둠은 빛을 가린다. 마치 빛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혼란을 만든다. 하지만 빛은 항상 존재했다. 빅뱅, 태초의 빛. 카오스의 암흑 속에서도 존재하던 빛. 빛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을 뒤덮고 있다. 빛을 가린 것은 인간이다. 김길후 작가는 『천개(天開)의 빛』이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돌아가야 할 ‘본성의 자리’를 찾아 가도록 일깨워준다.
김길후 작가는 현재 한국(대구), 중국(베이징), 이탈리아(아씨시)에 작업실을 두고 국제적 활동영역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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