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18 송좡현대문헌미술관 '존재와 허무' 개인전 ② |
다중적 시선: 한국 미술가 김길후 작가의 작품 속 자아, 타자 그리고 세계
우홍(?鴻)
“일실(一實)의 이치가 여여평등(如如平等)하여 피차(彼此) 구별(區別)이 없는 것, 그것을 불이(不二)라 한다.”
- 『불교학 대사전』 중에서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므로 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이니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역시 그러하다.”
- 『반야바라밀다심경』 중에서
‘일실(一實)’은 ‘진여(?如)’이기도 하며 우주 만유의 ‘진실되고 한결같은’ 본래 모습을 말한다. ‘일실불이(一實不二)’란 우주 만물이 본래 하나로 평등하고 구별이 없음을 뜻한다.
‘불이(不二)’는 ‘구별(區別)’하지 않음이다. ‘구별’은 ‘모든 이치를 헤아려 구분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타인과 나, 옳고 그름, 애정과 증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으로 나누는 것이다. 구별은 망심(妄心)에서 비롯되며 진심(眞心)은 모든 것을 동등하게 바라본다.
색(色)은 곧 색법(色法)이며 세상의 만물에 해당한다. 공(空)은 색법의 존재와 상호 의존적인 것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의해 발생하며 일정한 인과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불교 교리에서는 ‘물질’과 그것이 존재하는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은 색과 분리할 수 없고, 색 역시 공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김길후 작가의 작품이 지닌 함의를 이해하기 위한 인식론적 근원이다. 어떤 미술가가 위와 같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지니게 된 이유를 파악하려면,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배경부터 개인의 정신적 성장 과정까지 살펴보고 분석해야 한다.
한국 미술가와의 교류·협업이 늘면서 한국 전쟁 이후 미술 사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자 필자는 1960년~1970년대 초반에 출생한 동년배 미술가들의 내면 깊은 곳에 공통된 인격 특징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미술가들이 아래 표현법에 동의할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우선 그들을 한국 근현대사의 ‘분노의 세대’라 칭하겠다. 이렇게 세대의 특성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 전쟁 이후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쟁 후 한국은 군사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군부세력들이 20년이 넘도록 나라를 집권한 역사가 있다. 당시 강권 체제는 효율적인 중앙 집권 방식을 통해 한국의 산업화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 체제 유지를 위해 특수 부서를 조직하여 민심을 통제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강권 통치가 다소 완화됐지만, 정부의 집권이념, 특히 점점 수위가 높아지던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에는 군부 독재 시절의 전통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때문에 당시 사회로 발을 내딛던 청년 세대들은 비교적 타협하고 복종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가두 정치 집회에 참여하여 민주화를 요구했다. 1980~1990년대에는 TV가 보급되면서 거리로 나온 학생과 청년이 무장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이 전 세계 시청자에게 보도됐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응시 이론’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세계가 현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관심의 눈빛’을 보낸 것이다. 당시 TV에 잡힌 장면 속에서 군경의 폭력에 저항하던 거리 위 젊은이가 바로 한국 근현대사 중 민주화의 역사와 함께 등장했던 ‘분노의 세대’의 주역들이다.
‘분노의 세대’와 대응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일부 ‘흑역사’이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이 당시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나는 강권 정부의 주도하에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현대 산업화의 기틀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산업화된 사회 조직이 출현하면서 국민이 민주화를 자각(비록 독재자의 의도와는 달랐지만)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독재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 (political correctness)’으로 인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단 세력을 탄압하고, 민중의 사상을 억압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 생태를 어지럽히는 정부와 대기업, 재벌 간의 ‘애증’은 여전히 한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메우기 힘든 ‘감정적 구멍’으로 남아 있다.
1999년 김길후는 자신의 이전 작품 16000점을 불에 태워버렸다. 중국의 통속적 표현을 빌리면 그는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이다. 그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물론 세계 미술사에는 자기혁명적 방식으로 예술적 언어를 구축하고 작품 분위기를 전환하는 미술가가 적잖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처참한 방식으로 과거와 결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김길후가 작가 생애에서 ‘자살 행위’ 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변화해야만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건데 “분노의 세대’로서 자국의 ‘흑역사’와 자신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은 ‘감정적 구멍’과 결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극단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1980~1990년 초반까지 두 부류의 힘이 한국 미술계를 이끌었다. 하나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공식 미술, 다른 하나는 공식 미술계가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지지했던 ‘단색화 운동’ 사조다. 공식 미술은 이해하기 쉽고 중국 미술에서도 유사한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단색화 운동’은 다소 복잡하다. 현재 한국의 ‘단색화 운동’을 대표한 작가들의 작품은 자본의 영향으로 한국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 중이며, ‘단색화 운동’이 독재화에 ‘비협조적인 운동’으로 표현되거나, ‘침묵을 통한 항의’라는 정신적 가치로써 평가되면서 널리 추대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단색화 운동’이 독재 정부의 암묵적 승인과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무해’했기 때문이며, 겉으로 ‘모더니즘’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하 미술’ 형태로 등장했고 ‘분노의 세대’ 미술가들이 민주화 투쟁의 일환이었던 여겼던 ‘민중 미술’이다.
김길후의 1999년 이전 작품은 공식 미술 스타일에 속하는 몇몇 작품만 제외하곤 대다수가 당시 한국인의 내적 정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민중 미술’ 작품이었다. 그는 어째서 민중 미술 작품까지 철저히 태워버리려 했을까? 작가의 관점에서 미루어 보면 민주화 투쟁에 필요했기 때문에 예술적 표현을 지나치게 단순화, 표출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악마와 투쟁하는 과정 중 종종 그 악마성을 닮게 된다.”라는 김길후의 친구이자 화가인 전영일(全榮一)의 말로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김길후는 2000년 이후 ‘환생’의 의미로 완성한 첫 번째 연작에서 예술적 스타일의 변화뿐 아니라 작품의 목적과 의미가 자신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마음의 구멍’과 투쟁하기 위함 임을 보여주었다.
김길후는 2000년 이후 새로운 연작을 선보이며 타이틀을 <검은 눈물 Black Tears> 로 지정했다. 검은색을 주된 색채로 사용하고 드로잉에서는 세세한 처리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정서 표현과, 심리적 상징성을 강조하여 후속 작품에도 드러났던 강렬한 반기교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연작의 주재료로는 종이가 사용되었는데, 작가는 그 이유를 종이가 때론 스펀지 같기도 하지만 강철 같을 때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료가 포용과 저항이란 두 가지 성격이 병존하는 역설적 특징을 가진 덕분에 작가는 당시 마음속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드로잉을 시작할 때 캔버스 전체에 종이를 겹겹이 덧붙이면 무겁고 둔탁한 검은색을 띠는데 광막하고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고,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것만 같은 시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이는 특수한 역사를 보낸 한국 국민의 마음속에 쌓인 공포감, 무력감, 소외감, 고통, 울분, 상처를 상징한다. 마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도입부의 중후하고 비장한 선율이 인류의 고난, 고립, 발악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서히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이 『황무지』에서 묘사한 것처럼 사방이 적막하고, 생기 없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작가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극심한 고통, 끝없는 실망과 슬픔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끝없고 아득한 감옥이거나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불안과 두려움, 혹은 적막 속에서 활력을 잃어버린 깊은 계곡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기 없고 황량한 대지에서 인간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며,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 가슴속에 유일하게 남은 것은 오직 환멸과 절망감뿐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무겁고 비장한 서곡이 끝나면 타악기와 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어둡고 아득하기만 한 하늘에 갑자기 균열이 생기고 태양 빛이 스며들어온다. 김길후는 어둡고 적막한 화면 속에 인물의 눈동자나 신비로운 하늘이 위치한 곳에 희망과 지혜를 상징하는 흰색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종이를 뜯거나 망치와 못으로 종이를 두드리고 긁어내 흔적을 만들어 아래에 감춰진 백지가 노출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전투와 같아 인간의 지혜롭고 존엄한 본성과 추악하고 난폭한 본성이 서로 투쟁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투쟁의 대상은 폭정과 독재, 그 속에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 본성뿐만 아니라 폭정과의 오랫동안 투쟁하는 동안 인간의 본성이 폭력과 추악함에 동화되면서 크게 자리 잡은 ‘마음의 구멍’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류의 고난에 대한 성찰인 동시에 이러한 고난의 인간 본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기도 하다.
김길후의 <검은 눈물> 시리즈에는 <응시 The Gaze>라는 타이틀 가진 작품이 많다. ‘응시’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언어 맥락에서 권력의 행사, 뒤섞인 욕망, 계층적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서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자는 ‘바라보는’ 주체이고 대부분 권력과 욕망의 주체이다. 피 관찰자는 ‘보여지는’ 대상이자 권력의 대상이다. 보는 행위와 보여지는 행위는 주체와 대상,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발생시켰지만, 다중적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주체와 객체의 지위가 전환될 가능성에 직면하게 됐다. 따라서 ‘응시’는 ‘바라보는’ 과정 중 복잡하고 다원적인 사회 정치적 관계를 양산했다. 즉, 피비린내 나는 반란과 투쟁을 거쳐 민주화가 한국 국민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고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법률로 명시한 이후, 독재를 비난하는 일은 일종의 ‘정치쇼’ 처럼 다른 형태의 ‘민중 미술’로 변화할 것이다. 그래서 김길후의 작품의 관찰과 반성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 전환이 발생했고 인간과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성찰이 그의 작품에 있어서 가장 깊고 고귀한 정신적 가치가 되었다. 사회적 화해를 주장해 역사적 명예를 얻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김길후 화백은 <검은 눈물> 시리즈에서 다룬 진지한 성찰적 주제를 통해 인류고난에 대한 반성을 거쳐 고난의 인간 본성은 왜 형성되는지에 관한 성찰을 끌어 냈다. 그 후 두 번째 연작 <비밀의 화원 Secret Garden>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김길후가 <검은 눈물> 시리즈를 발표한 후 사람들은 그를 비관주의자, 허무주의자라 오해했다고 한다. 그 역시 스스로를 반성하며 “4년이 넘는 고통을 겪으며 <검을 눈물>을 완성 시키고 나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 였을까?’ 하고 질문해 보았다”고 말했다. 사실 <검은 눈물> 시리즈를 작업하는 동안 김길후가 주목한 주제는 이미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내 그림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고 있다. 아마도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될 것이다. 우리는 고도로 발전된 평화로운 문명 속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비참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비극은 인생 중 가치 있는 것을 훼손시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 이처럼 미술가가 운명의 비극성을 표현하려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우울함과 부정적 감정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심리적 감화력을 가진 비극을 느끼는 순간에도 “인생의 가치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김길후는 <검은 눈물> 시리즈가 마무리될 무렵부터 고통에서 빠져나와 시간과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고 더욱 광범위한 삶의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산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고 정상을 향해 올라갈 것이며 무지개를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과정이거나 또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곤경 속에서도 인간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다.
연작 <비밀의 화원>은 바로 김길후가 한국의 어두운 현대사와 역사가 만들어낸 사회 심리적 ‘구멍’에 대해 깊이 반성한 후 방향을 바꾸어 당시 문명사회 모델과 삶의 운명에 관해 새롭게 고민하고 내놓은 답변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1960년대 초반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경제 성장과 신속한 산업화를 이용해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을 얻은 시기를 지냈고,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산업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30년이란 짧은 시간 만에 한국은 전통적 농업 사회에서 첨단 산업화 사회를 이룩한 선진 국가가 되었다. 한국과 같은 고속 성장은 전례가 드문 케이스였다. 비록 박정희 정권 때도 ‘새마을 운동’ 제창하며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 문제를 해소해 보려 하였지만, 한국 국민 사이에서는 잃어버린 정신적인 보금자리를 향한 ‘향수’가 만연했다. 스베틀라나 부임(Svetlana Boym)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 『The Future of Nostalgia』에 “향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 혹은 ‘애초에 존재한 적 없는’ 보금자리에 대한 그리움이다. 향수는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낯선 타향에 있는 듯한 감정이지만, 낭만과 허구적인 성격이 짙다.”라고 서술했다. 또한 “향수는 얼핏 보면 어떤 장소에 대한 그리움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시대에 대한 그리움, 유년 시절과 꿈속의 느릿한 리듬에 대한 그리움이다.” 라고 기술했다. 이렇게 보편적인 집단적 무의식이 존재하는 분위기 속에서 김길후 작가는 <검은 눈물> 시리즈를 완성한 후 방향을 바꾸어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에 주목했다. 외부의 사회적 요소와 내부의 개인적 요구가 결합하면서 그의 작품은 ‘향수’와 관련된 주제, 즉 인간 본성의 ‘보금자리’ 중 하나인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당연히 현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김길후의 아버지는 문예와 서예를 사랑하는 기업가다. 무엇보다도 전통 한국 가정에서는 흔치 않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스타일로 자녀를 대하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전통적인 한국 여성상으로서 자녀에게 자애로운 분이셨다. 원예가 부모님의 공통 취미였던 덕에 집에는 갖가지 화분을 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부모님의 취미는 유년기의 김길후에게도 영향을 주어 원예사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 꿈이었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집으로 돌아와 화원에 있는 화분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적 근거가 반영된 <비밀의 화원>은 사실상 이상적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보금자리에 대한 그리움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문화적 이상이자 정신적 근원이다. <비밀의 화원> 시리즈에서 작가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을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부호라 여겨도 된다. 요정과도 같은 중성적 인간은 환상 같은 화원에서 산다. 그곳은 마치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처럼 구체적인 시간이나 공간적 지향도 없는 순수한 세계이다. ‘나’와 대응되는 존재는 정화를 거친 백합이다. ‘백합’은 어린 시절 작가의 부모님이 화원에서 가장 아끼던 꽃이며, 영어의 이중적 의미를 중 ‘순결한 사람’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곳은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모든 ‘의미’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순결한 세계에 있다. ‘나’와 백합은 서로 응시하고, 대화하고, 기대며,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장면은 양성 간의 육체적 관계를 뛰어넘어 정신적인 융합과 의미상의 상호 교감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에덴동산의 상징적 의미는 하나의 의미가 생기기 전의 존재, 수치심이 없는 존재이다. 이는 인류에게 수치심이란 개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 중 ‘구별이 없는 마음’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구별 없는 마음’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악한 사람 모두를 평등하고 진심으로 대하며 차별하지 않는 것.”(백법문답초 제2권에서 발췌) 이라고 한다. 작가가 <비밀의 화원>을 통해서 전달하려 했던 관념은 사물과 나를 모두를 잊어버린 환경에서 ‘타자’를 통해 나를 관망하고, 타자와 내가 융화되고 의미를 만듦으로써 결국엔 ‘나 자신’이 나를 응시하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비밀의 화원> 시리즈는 김길후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쫓아 보편적인 향수의 정서를 관조하는 콘셉트를 기초로 삼고 사람과 사물 관계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자아와 타자 사이 연관된 의미를 재인식한 후, 타자와 나의 이중적 관찰을 통해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밀의 화원> 이후 김길후의 작품은 더욱 자유롭고 포괄적인 경지에 오른다.
이후 선보인 <흔적 Carving> 시리즈는 김길후의 사유 방식으로 미루어 볼 때 <비밀의 화원>의 후속편으로 볼 수 있다. <사유의 손 The Thinking Hand>, <현자 The Wise Man>, <영웅 Hero>이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정신과 물질, 순간과 영원, 고상함과 평범이란 보편적인 개념에 대한 고민을 거쳐 인류의 지식과 정신의 역사가 이어온 전통을 뒤엎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쳤듯이 고유한 개념적 제약을 무시하고“모든 것을 새롭게 정의”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이름 붙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김길후의 작품에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먼저, 그의 작품은 더 이상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을 주재료로 하되 다른 색채의 상징성을 담았다. 그 중에서도 금색과 은백색이 가장 자주 사용되는데, 마치 교향곡 속 금관, 목관 악기의 음색을 떠올리게 하며, 희망과 자신감을 의미한다. 또한 작가는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통해 선이 지닌 표현력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최근 작품 스타일을 ‘유화의 방식으로 그린 수묵화’라고 정의했다. 김길후의 변화는 재미있는 일화에서 비롯됐다. 한국에 있던 김길후는 중국 티베트에서 온 현자를 만나게되었다. 현자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둔황 출신의 당나라 화공이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화신이며 그의 후손이 김길후라는 이름으로 한국땅에 나타났다고 한다. 심지어 작가에게 “당신이 바로 김길후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김동기(金東基)에서 김길후(金佶煦)로 개명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마흔이 다 되어 독실한 불교도가 된 김길후에게는 환생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을 당나라 화공이라 생각하고 회화를 통해 정신을 수양했다. 작품 속 선에 대한 연구와 깨달음은 정신 수양의 결과물이다. 그는 물질적 생활을 원시적인 수준으로 간소화하고, 강도 높게 작업하며 모든 집중력을 ‘선’을 깨닫는데 쏟아부었다. 그는 결국 인간 본연의 상태를 가장 직접적인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선’ 임을 깨닫게 됐다. 기호학에서는 원시적 기호가 부호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은 후 최종적으로 고정된 언어 표현으로 굳어졌다. 이것은 의미 있는 ‘코딩’ 과정이다. 오늘날 고도로 알고리듬화 된 수묵화 기법과 언어는 후손들이 알고리듬으로 고착된 선인의 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이는 곧 전통 수묵화의 쇠퇴를 의미한다. 김길후의 자신감은 유화 재료로 수묵화 회화를 시도한 것에서 시작됐으며 김길후라는 이름이 당나라의 무명 화공과 관계가 형성되도록 운명 지어진 것처럼, 그는 이번 시도를 반드시 완성해야 할 운명적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김길후의 역할은 이미 고착화된 언어 로직에서 ‘해독법’을 찾아 기표와 기의를 분리하는 것이다. 선은 이렇게 언어, 부호에서 기호로 돌아가 새로운 의미와 자유를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김길후의 최근 작품을 통해 선과 형태가 만나고 분리되면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며 독립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 자체는 리듬과 운율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러한 리듬과 운률은 사람의 심박수, 호흡 및 정서적 변화와 일치하고 꾸밈없이 진솔하게 한 획만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그림이 인간의 본질적인 정서 상태와 생명의 의미가 연관성을 갖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2000년 이후 김길후 작가의 예술적 탐구와 경험을 집대성한 자리이다. 인생의 깨달음, 예술적 관념 혹은 표현 기법과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작가가 예술적 수양과 종교적 깨우침으로 얻어낸 필연적 결과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번 전시작을 통해 그의 그림이 평면에서 입체로 또 한번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형식적 언어로 시도라 하고 재료 관념적 측면으로 전달이라고 한다. 먼저, 선과 입체의 결합은 입체주의적 전환이 아니라, 선이 지닌 속성에서 한 층 더 해방되고, 선은 평면에서 시작하여 입체를 만든다는 가설을 부정하기 위한 전환이다. 그러면 선과 입체 조형 사이에 존재하는 조형 부호적 가설에 얽매이지 않고도 선을 순수한 정신적 물화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다. 다음, 포장 박스를 재료로 사용하여 철학적 암시를 표현했다. 박스는 옷처럼 물질적 개념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텅 빈 사물이기도 하다. 김길후는 이로써 물질과 개념, 기표와 기의, 존재와 허무와의 관계를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아직 논리적 프레임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논리적 프레임을 바탕으로 우리를 다시 한번 <비밀의 화원>에 데려다 놓는다. 선이 박스의 겉과 속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것은 식물이 천천히 생장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꽃 같지만 꽃이 아니며 인간과 도 닮았으나 인간이 아니다. 마치 둔황 석굴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선인의 모습 같기도 하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에서 사람의 존재가 식물보다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란 단순하지만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져 놓았다.
또한 김길후는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형상으로 구성된 대형 작품을 두 점을 그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상을 다시 나무의 형상과 합치는데 여기에는 인류와 자연 간의 관계가 ‘일실불이’ 즉, 만물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음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김길후는 이번 개인전에 의미가 구조를 이룬 ‘미로’를 세워 놓았다. 이것은 사람과 사회, 자연, 만물의 존재 가치에 관한 우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오랫동안 이어왔던 인간의 기원, 의미, 귀결에 관한 명제에 대해 거듭 질문한다. 동시에 사람과 사회, 인간과 자연, 사람과 만물이 서로 보살피고 의지하며 의미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진리을 보여주었다.
정리해보면 김길후는 한국 역사의 암흑기와 이로 비롯된 한국 민중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거대한 ‘심리적 구멍’을 반성하고 고찰하던 중, 자아와 타자, 사회, 자연, 만물 간의 다양한 관계와 다중적 명제를 ‘다중적 시선’으로 관찰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이를 통해 자신의 창작 의미의 논리 체계를 구축했다. 필자는 중국의 미술 이론 연구자로서 김길후의 다양한 작품에 관한 연구를 시도하며 한국 현대사와 문화를 관찰하게 되었다. 과정 중에 필자의 정서와 감성이 투사되면서 필자 또한 관찰의 대상이 됐다. 이것은 관찰자와 피 관찰자, 주제와 객체가 전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내가 김길후를 관찰한 ‘결과’는 반대로 김길후가 나를 관찰하는 시각이 된다. 이러한 다중적 시선의 교차는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하고 미술의 존재하는 현장이다.
2018년 8월10~18일 베이징 그리고 다롄에서 씀
?鴻 우홍
미술 비평가, 큐레이터, Artintern.net 편집장, 쑹장당대예술문헌관 관장,
지린예술학원 교수 및 대학원 지도 교수
Multiple
Visions: The Self, the Other, and the World in the Work of South Korean Artist
Kim Gil-hu
Wu
Hong
“The principle of the one reality is that all are
equal, with no differences between things; there is no second.”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Foxue
Dacidian)
“Form is no other than emptiness, emptiness is no
other than form; what is form is emptiness, what is emptiness is form. The same
can be said of sensation, thought, formation, and consciousness.
?The Heart Sutra
“One
reality,” or bh?tatathat?, is the
essential truth of the myriad things in this world. “One reality without
differentiation” means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have always been equal and
without differentiation.
“Without
differentiation” means that there is no differentiation or the consideration of
differences between things, such as distinguishing the self from someone else,
right from wrong, love from hate, good from evil, or beauty from ugliness.
Differentiation is the beginning of a false heart; a true heart sees everything
as equal.
Form
is material; it is all things in the universe. Emptiness often points to the
interrelatedness of the existences of various forms. All things are born of
principal and secondary causes; both exist in a certain cause and effect relationship
and cannot exist independently. In Buddhist doctrine, the material is
inseparable from its existential relationships; there is no form apart from
emptiness and no emptiness apart from form.
All
of this is an epistemological resource for understanding Kim Gil-hu’s work. To
understand how a particular artist’s worldview and values formed, we need to
examine and analyze the individual’s broader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 and
spiritual growth.
As
I have had more opportunities to meet and collaborate with South Korean
artists, my understanding of post-war Korean art has deepened. South Korean
artists born in the 1960s and early 1970s, who we could consider the same
generation, may have something in common in the deeper structure of their spiritual
character. I call them the “angry generation” of modern South Korea. I’m not
sure if my South Korean artist colleagues would agree with this formulation,
but the emergence of this generational spiritual quality is inextricably linked
to a specific period in South Korea’s post-war history.
Park
Chung-hee and Chun Doo-hwan took power through a military coup, and their
military junta ruled South Korea for more than twenty years. In that period,
the efficient concentration of power in authoritarian rule allowed the South
Korean economy to industrialize, a phenomenon called the “Miracle on the Han
River.” However, they ruled with an iron fist, controlling popular will and
preserving their dictatorship through a network of informants. In the later Roh
Tae-woo presidency, authoritarian rule loosened, but its governing principles
were still essentially an extension of the military authoritarian tradition, particularly
with regard to surging demand among the people for democratization. During this
period, a generation of South Korean young people were going out into society
and, compared to the compromise and submission of the previous generation, they
more often used direct street politics to express their desire for democracy.
In the 1980s and 1990s, with the popularization of television, images of
confrontations between young South Korean students and military and police
forces in the streets were broadcast to audiences around the world. In the
post-modern theory of the “gaze,” this was the world’s first lingering look
into modern Korean society. Spurred by the television broadcasts of those
years, the young students who clashed violently with the military and police in
the streets came to make up the “angry generation” that emerged with advancing
democratization in modern South Korea.
The
“angry generation” responded to a dark time in the modern history of South
Korea. Today, many South Koreans may still feel conflicted when reflecting on
this period in history. On the one hand, it was the effective and powerful
methods of an authoritarian government tha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industrialization of modern South Korea, and with the organizational methods of
an industrialized society, the desire for democracy emerged among the people
(even if this was not what the autocrats intended). On the other hand, due to
the autocratic obsession with political “cleanliness,” they repressed appeals
for democracy and tried to control ideas among ordinary South Koreans. Even
today, a love-hate relationship still plagues the government, large
corporations, and large consortiums in the South Korean political ecology. This
is an irreconcilable emotional hole in the hearts of South Korean people.
In
1999, Kim Gil-hu set fire to 16,000 works he had made. To use a common Chinese
expression, this is someone “who has already died once.” Why did he need to
treat his works in such an extreme way? World art history does not lack for
artists who have undergone a self-transformation, changing their artistic
languages and styles, but there is no need to bid goodbye to the past in such a
violent way. What compelled Kim to use this “suicidal” career move to complete
his transformation? I think that, as a part of South Korea’s “angry
generation,” he had to bid goodbye to this black period in South Korean history
and the immense emotional black hole inside himself; in order to do that, he
had to use an extreme method.
In
the 1980s and early 1990s, there were two forces guiding the South Korean art
scene: one was official art that represented mainstream ideology and the other
was Dansaekhwa (the monochrome painting
movement), which had the tacit approval and support of the government.
The official art model is easy to understand; there are many similar phenomena
in today’s Chinese art scene. Dansaekhwa is
rather more complicated. Today, works by key Dansaekhwa artists, when placed within the capital machine, are
setting new auction records in the modern Korean art market. However, Dansaekhwa was a non-cooperation movement in
the autocratic period, and even widely praised the spiritual value of silent
protest. In essence, Dansaekhwa received
the tacit approval and support of the autocratic
government because it was “harmless”
politically and superficially labeled “modernist.” At the same time, it could
only have appeared as an underground art phenomenon; it was movement art in the
democratic struggle for the “angry generation” artists.
In
addition to some works in the mainstream artistic style, the majority of Kim
Gil-hu’s work prior to 1999 was movement art that directly reflected the
emotions of the South Korean people during this time. Why did he want to
completely destroy even the movement art? From Kim’s perspective, these works
were excessively simple and superficial in their artistic expression due to the
needs of the democratic struggle. However, the more important issue is, in the
words of Kim’s friend and artist Jeon Song-yeong: “In the process of fighting
with demons, people often bring some of that demon nature into themselves.”
This is the key. Kim’s first series of works made after his rebirth in 2000
cannot simply be seen as a transformation in artistic style; its goal and
meaning lie in the fight with the massive psychological black hole inside him.
Black Tears was
Kim Gil-hu’s first new series after 2000.
Black is the key color of the series. In terms of painting style, he no
longer relies solely on the treatment of concrete details, and he highlighted
an overall emotional expressiveness and psychology, which also hints at the
intensely anti-technological elements of his later work. The base material for
most of the series is paper. Kim chose paper as a material because he believes
that paper can be like a sea sponge at some times, and like steel at others.
The paradox between the forgiving and resistant qualities of paper reflects the
complex emotions and ideas that the artist wanted to express in this period.
In
the beginning, the paper was repeatedly layered to create a heavy, obscure black.
This black is endless, devoid of signs of life. This visual abyss can swallow
everything, symbolizing the universal fear, fragility, loneliness, pain, and
worry pent up inside ordinary people in a particular stage in South Korea’s
history. Like the first part of Beethoven’s Ninth Symphony, the low and solemn
composition suggests humanity’s suffering, helplessness, and struggle. As the
figures slowly emerge, the scene is bleak, and all vitality is nonexistent, as
if it were a scene from T. S. Eliot’s The
Waste Land. The works express the artist’s endless despair, grief, and deep
pain. They seem to comprise a profound, endless prison, or reflect the terror
and confusion before a storm starts, or depict a remote, quiet place without a
hint of life. In these wastelands entirely without vitality, people are neither
living nor dead, and are both living and dead. All that lies in their hearts
are disillusionment and despair. After the low and solemn overture in
Beethoven’s Ninth Symphony, the percussion and wind instruments suddenly become
more prominent, as if a crack has opened in the dark, remote skies and the sun
can shine through. In Kim Gil-hu’s gloomy, desolate scenes, white that
symbolizes hope and goodness appears in the figure’s eyes or in the mysterious
sky. This white is a trace lurking below the surface that the artist reveals by
tearing at the paper or striking the paper with hammer and chisel. This process
seems like a battle, a fight between human goodness and dignity and human
ugliness and ruthlessness. The target of this fight is not just tyranny and
dictatorship or the fragility and weakness of human nature under tyranny and
dictatorship; the target is also the giant psychological black hole that, in
the prolonged fight against tyranny, is formed after human nature is
homogenized by oppression and ugliness. This is a reflection on human
suffering, but it is also a deeper reflection on human nature amidst this
suffering.
Like
this series, many of Kim’s works have names related to “the gaze.” In the post-modern
philosophical context, “the gaze” refers to a way of looking that carries a
mechanism of power, a web of desire, and an awareness of identity. The viewer
is the subject that is looking, as well as the subject with the power and
desire; the viewed is the object of this look, as well as the object in this
power relationship. The acts of looking and being looked at constitute a
subject and an object, the Self and the Other, but the interweaving of multiple
visions makes it possible for the positions of the subject and object to shift.
Thus, “the gaze” leads to the active process of looking, which produces complex
and diverse social and political relationships. After experiencing bloody uprisings
and resistance, after democracy became consensus among the South Korean public,
and particularly after Kim Dae-jung’s government established democratic rights
in law, simply criticizing dictatorship became like a political show, another
form of movement art. In Kim Gil-hu’s work, there is a transformation in the
subject and object of looking and contemplation, and the contemplation of
humans and human nature become the deepest and most precious spiritual quality
in his work. Kim Dae-jung,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and Nobel Prize winner
for his work advocating Korean reconciliation, once said that we should hate
the crime, not the man.
Because
of the deeply contemplative themes in Black
Tears and his reflections on human suffering, Kim came to wonder why human
nature permits this suffering, which allowed him to enter the creative state
necessary for his second series: Secret
Garden.
As
Kim has said, after making Black Tears,
people thought that he was a pessimist and a nihilist. Reflecting on this, he
said, “After four years of deep pain, I made Black Tears. Then I looked back and asked, ‘When were my good times?’”
In fact, even in the process of completing Black
Tears, the themes that interested Kim suggested new possibilities. “Light
shone in the darkness of my paintings. Perhaps sadness can be cured with even
greater sadness. I know that even if they live in a highly developed and
peaceful society, there are many people who are grieving.” The Chinese author Lu
Xun once wrote that tragedy is showing the destruction of the valuable things
in life to an audience. The goal of an artist expressing the tragedies of human
life is not to encourage degradation and negativity; it is to force people to
discover the value and beauty of the valuable things in life even as they deal
with the immense psychological force of tragedy. Following this line of thinking,
Kim realized that, in the later period of the Black Tears series, he had to re-emerge from this suffering and
transcend the limitations of time and society. He had to focus on the larger
themes in life. “In any case, when the sun sets behind the mountains, I will
climb to the top of the mountain again, looking carefully for a rainbow.” This
process is like waiting for hope in a hopeless place, as Samuel Beckett
suggested in Waiting for Godot.
Alternatively, Albert Camus’s “The Myth of Sisyphus” shows that within the
universal predicaments of human reality, the existential value of man lies only
in his constant search.
With
the Secret Garden series, Kim Gil-hu
moved past his deep reflections on the dark period in modern South Korean
history and the resulting psychological black hole, and he shifted toward
re-thinking contemporary South Korean society and the role of fate in life.
As
I have mentioned, beginning in the early 1960s, South Korea experienced the
“political correctness” of economic development and rapid industrialization
during the Park Chung-hee and Chun Doo-hwan periods, and this industrialization
reached its peak while Roh Tae-woo was in power. In just thirty years, South
Korea had transformed itself from a traditional agrarian society into a highly
industrialized developed nation; this development took place with unusual
speed. During the Park Chung-hee era, he proposed Saemaul Undong or the “New Village Movement” to
solve a series of social issues that had arisen in the course of rapid industrialization,
but for ordinary South Koreans, a nostalgia for a lost spiritual home had
already spread. In The Future of
Nostalgia, Harvard University professor Svetlana Boym writes, “Nostalgia…
is a longing for a home that no longer exists or has never existed. Nostalgia
is a sentiment of loss and displacement, but it is also a romance with one’s
own fantasy.” “At first glance, nostalgia is a longing for a place, but actually it is a
yearning for a different time?the time of our childhood, the slower rhythms of
our dreams.” After he made Black Tears series, it
is precisely this pervasive collective unconscious that focused Kim’s mind on a
more essential level of human nature. The combination of external social
factors and internal personal needs compelled him to return to a nostalgic
motif, namely, the childhood experiences that so often serve as a spiritual
home for people. Of course, this childhood experience has a basis in reality.
Kim’s father was an entrepreneur who loved art and calligraphy, but more
importantly, he dealt with his children in an open-minded and democratic way,
something seldom seen in traditional Korean households. His mother was a
traditional Korean woman who cared deeply for her children. His parents shared
a love of gardening, and their house had a small garden filled with all kinds
of plants. His parents’ hobby also influenced the young Kim, and as a child, he
dreamed of being a gardener when he grew up. The first thing he would do every
day after he got home from school was tend to the plants in the garden. Though Secret Garden has a foundation in
reality, Kim Gil-hu has made it much more idealistic; it is a fond memory of a
garden that never really existed or a cultural ideal and a spiritual source. In
the works in this series, the artist is magically transformed into a neutral
person that is neither male nor female, which could be seen as a symbol of a
universal human nature. This spirit-like neutral person lives in a dreamy
garden, like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It is a pure world without
specific temporal or spatial references. The object that corresponds to the
Self is a purified lily. When he was a child, lilies were Kim’s favorite plant
in his parents’ garden. In English, the flower has a double meaning, but it
often symbolizes the pure of heart. In a pure world before time started and all
meaning unfolded, the Self and the lily gaze at one another, converse with one
another, cozy up to one another, and have intercourse with one another. These
images have transcended sexual love between men and women to achieve a
spiritual fusion of meaning. In the Bible, the Garden of Eden symbolizes an
existence before the production of meaning. It was a place without shame
because the concept of shame had not yet arisen in humanity. In Buddhism, “a
heart that does not differentiate” is a very important concept. It is not the
failure to understand good and evil; it is the equal treatment of good and evil
people. If you have a true heart, there is no difference. The idea that Kim
wants to convey in this series is that, in a realm where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the Other looks at the Self, and the Other and
the Self fuse with one another, each causing the other to produce meaning. In
the end, this transforms the Self into an observer of the gaze itself.
In
the process of creating Secret Garden,
Kim Gil-hu traces his childhood experiences. On the foundation of universal
nostalgic emotions and through the symbolic express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object, we re-examine the significant connections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Through the dual vision of the Self and the Other, we come
to consider the final meaning of life.
After
this, Kim Gil-hu’s work entered a freer and broader realm.
In
Kim’s intellectual logic, his later series Carving
can be seen as an extension of the Secret
Garden series. Through the works in Thinking
Hands, Wise Man, and Hero series,
he reconsiders the combinations of universal concepts such as the spiritual and
the material, the momentary and the eternal, the lofty and the ordinary,
thereby subverting human intellectual and spiritual history. As Nietzsche wrote,
“And lately I heard him say this word: God is dead!” Breaking with all fixed conceptual limitations, he re-evaluates everything so
that everything can be re-named.
In
recent years, Kim Gil-hu’s work has undergone another change. In one sense, his
artworks are no longer pure black; there is a color symbolism within the black
tone. Gold and silver are most common; like the brass and woodwind tones in a
symphony, their emergence always announces hope and confidence. He has also
shown a deep interest in line in his works over the last few years. He has said
that he “uses oils to paint ink paintings” in this portion of his work. The
motivation for this approach came from an interesting story. Kim Gil-hu met a
Tibetan wise man in South Korea, and this wise man told him that a Tang-era
artisan painter from Dunhuang was the previous incarnation of the late Ming and
early Qing painter Bada Shanren. In his later incarnations, he appeared in
South Korea as a person called Kim Gil-hu. This wise man told Kim that he was
Kim Gil-hu. Therefore, he changed his name from Kim Dong-gi to Kim Gil-hu. For
someone who became a devout Buddhist at age 14, this experience was a rebirth.
He believed that he was that Tang-era artisan and used painting as a method in
his spiritual practice. In his work, his study and understanding of line is the
result of this spiritual cultivation. He has simplified his material life to
its most primal state, even as he works intensely to focus his attention on
understanding line in painting. In the end, he realized that line was the most
direct way to express man’s essential state. In symbology, the meanings of
primitive marks are set as symbols, finally creating a fixed linguistic
expression, a process of encoding meaning. Today, within the highly formulaic
technical system and linguistic logic of traditional ink painting, painters can
only follow their forebearers’ fixed formulations, a trend that represents the
decline in traditional ink painting. Kim’s confidence comes from his attempts
to use the materials of oil painting to achieve a revolution in ink painting.
Like the pre-destined relationship between the name “Kim Gil-hu” and that anonymous
Tang-dynasty artisan, he believes that this is fate telling him that this is
his duty. Kim’s working methods encode this fixed linguistic logic, separating
signifier and signified. In this way, lines once again become markings through languages
and symbols, thereby giving them new meaning and new freedom. In Kim’s recent
works, we discover that line has an ambivalent connection to form, though line
is also independent. Line embodies rhythm and meter, which is consistent with
changes in the human heart rate, breathing, and emotions. With one stroke, Kim
directly communicates his intentions, entirely without adornment. He then
connects his painting to man’s most essential spiritual states and lived
meanings.
This
exhibition could be seen as the epitome of Kim Gil-hu’s artistic explorations
since 2000. Whether these works are his perceptions of life or the expression
of his artistic ideas and techniques, they are the inevitable result of his use
of art as a form of spiritual cultivation and Zen meditation. More
interestingly, in this exhibition, his paintings once again shift from the
two-dimensional to the three-dimensional. This shift is an experiment with
formal language, but it also reflects an engagement with materials and concepts.
First, this combination of line and three-dimensional form is not some Cubist
transformation; in order to further liberate the properties of line, he does
not assume that one must arrive at three-dimensional form via two-dimensional
form. In this way, he has essentially relaxed the structurally encoded
assumptions between line and three-dimensional form, which returns line to the
objectified state of a pure spirit. Second, the use of packing boxes as a
material is a metaphor for a philosophical suggestion; the packing boxes are
like the clothing on people’s bodies. They are the materialization of a concept,
but when rendered in wood, they are empty objects. They symbolize the
relationship between material and concept, signifier and signified, existence
and nothingness, which simply constitutes a logical framework. Within this
framework, Kim brings us back to his Secret
Garden. The lines migrate along the surfaces and inside these boxes, like
plants growing aimlessly. They are flowers and not flowers, people and not
people, but they are akin to those apsaras floating in empty space in the
Dunhuang grottoes. Here, Kim Gil-hu poses a simple question worthy of deep
reflection: Can the existence of man be more meaningful than that of plants?
Kim
Gil-hu has also painted two massive paintings for this exhibition, which are
respectively comprised of the figures of father and daughter, mother and son.
The father and mother figures are fused with the shapes of trees, serving as a
metaphor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ity and nature. In “one reality
without differentiation,” all are equal, without difference.
In
this solo exhibition, Kim Gil-hu constructs a massive labyrinth of meaning, an
allegory of the existential values of man, society, nature, and all things. It
once again asks those eternal questions about the origins, meaning, and end of
human life: Who are we? Where did we come from? Where do we want to go? At the
same time, he also reveals the existential essence of the mutual references, mutual
reliance, and mutual production of meaning that exists between man and society,
man and nature, and man and all things.
In
reflecting on a dark period in South Korean history and in his internal
interrogations of the psychological black hole created inside the South Korean
people during this dark period, Kim Gil-hu examined and referenced the
“multiple visions” of the various relationships and issues between the Self,
the Other, society, nature, and all things, creating a linguistic logic and
model for his work. As a Chinese art theorist and researcher, I have further
engaged with ways of looking at modern South Korean history and culture through
this case study of Kim Gil-hu. In this process, because he has invested his
emotions, he has become the target of this looking. This is a process of
transformation, between seeing and being seen, subject and object. Here, I am
looking at Kim’s “results,” which is also the lens through which he looks at
me. The interweaving of multiple visions is the site of infinite meaning
production and artistic charm.
August 10-18, 2018 Beijing and Dalian
(Wu
Hong: Art critic, curator, editor-in-chief of Artintern.net, managing director
of the Songzhuang Contemporary Art Archive, and a guest professor and graduate
advisor at Jilin College of the Arts)
References
Boym,
Svetlana. The Future of Nostalgia, New
York: Basic Books, 2001.
Nietzsche, Friedrich Wilhelm. Thus Spake Zarathustra: A Book for All and None. Translated by Thomas Wayne. New York: Algora Publishing,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