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21 학고재 갤러리 '혼돈의 밤' 김길후 개인전 ①


혼돈의 밤 The Night of Chaos

김길후展 / KIMGILHU / 金佶煦 / painting / 2021.07.21 ~ 2021.08.22 


치유로서의 그림

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뭔가에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간 정신의 지고한 상태를 가리킨다. 무슨 일에 빠져 몰입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상황이다. 예컨대 바둑에 미쳤거나 어떤 기예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그러나 좀 더 이 글의 논지에 가까운 예를 들면,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미친 듯이 빠져들지 않으면 경지에 오르지 못함을 뜻한다. 


 내가 보기에 김길후가 딱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다. 약간 과장하면,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온통 그림 생각에 젖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다작(多作)의 작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50호 정도 크기의 작품을 단 10분만에 그릴 정도다. 아주 빠르면 5분, 늦어봐야 30분이다. 그러니 그의 작업실은 넘쳐나는 그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화면이 온통 시커먼 검정색 일색(一色)으로. ₁ 


 ₁ 이건 약간 과장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김길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2백호에서 3백호 정도 되는 대작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2010년도에 제작한 작품들 중 일부는 꼼꼼하게 공들여 제작한 것들도 있어서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면 권총을 빼는 주인공의 솜씨가 놀랍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명의 적을 쓰러트린다. 일본의 한 사무라이 영화에는 주인공인 맹인 검객이 휘두르는 칼에 적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명동거리를 누빈 협객 시라소니(본명 이성순)의 싸움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맞아서 쓰러진 깡패들이 거리에 즐비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떠돈다. 


 작가의 작품을 논하는 글에 웬 싸움 이야기? 김길후에게 있어서 일획(一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길후는 오랜 기간 검정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단색조의 그림을 그려왔는데, 인물화가 주종을 이룬다. 그것도 거의 전부가 자화상이다. 김길후는 거울도 보지 않고 내면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김길후 자신이다. 


 일획에 검정과 흰색이 자아내는 콘트라스트가 강한 화면 효과는 김길후 그림의 특징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서로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김길후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변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그때 작용하는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온다. 그럴 때, 그 서로 다른 마음을 포착해서 표현하는 구상력이 얼마나 특출한가 하는 것이 탁월한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것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판명되는데, 김길후의 경우는 물론 전자에 속한다. 


Ⅱ.


 김길후는 허공에 긴 칼을 휘두르는 검객일 수도 있고, 흐드러지게 한 판의 춤을 추는 춤꾼일 수도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검객이나 춤꾼은 행위를 드러내지만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김길후는 화가이기 때문에 붓을 들어 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길후는 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진한 춤을 추는 무당(shaman)이다. 신명에 빠져 붓춤을 추면서 잃어버린 먼 태곳적의 ‘영기(靈氣)’를 불러내고자 한다. 예술이 지닌 치유의 기능을 초혼(招魂)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임재하게 하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숱한 덧칠로 이루어지는 서양의 그림과는 달리 김길후의 그림은 일획으로 이루어진다. 머리 속에 떠오른 영감과 이미지를 순식간에 화면에 옮긴다. 그것은 찰나에 이루어진다. 머뭇머뭇하다가는 이미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포착하여 일획으로 단번에 그려내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지는 그 동작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의 속사(速射)를 닮았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사극에 등장하는 검객의 칼솜씨에 더욱 가깝다. 그것이 곧 일획이다. 한 번의 결정적인 내리그음이 곧 일획인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신체적, 정신적 수련에서 나온다. 


 왜 오늘의 상황에서 일획론이 그처럼 중시돼야 하는가? 다름을 위해서이다. ₂수많은 같음의 범람 속에서 다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필법이 필수적이다. 1999년 김길후는 제2의 질적 도약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불태운 바 있다. ₃그리고 거듭 태어났다. 이제까지 그려 온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위해 그 이전에 그린 드로잉,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 등등, 내용상으로는 구상화를 비롯하여 추상화, 그리고 80년대 당시 한창 유행하던 민중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림을 폐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풍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말에 의하면 “간단명료한 것으로 승부를 걸자”는 취지로 검정과 흰색을 주조로 한 종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 기간이 한 오 년쯤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삶의 풍경]전(2004.8.19 - 9.17)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동안 한국 미술계가 지나치게 추상화 일변도로 전개돼 왔으며, 미디어, 영상, 개념, 설치미술 등등에 편중돼 왔다고 판단, 소외된 장르인 구상회화에 주목한 기획전이었다. 김길후 는 황영자, 이흥덕, 임만혁, 공성훈, 남기호 등등 다른 구상화가들과 함께 이 전시회에 참가, 2백호에 달하는 대작 5점을 출?품했다. 김길후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한다. 


₂ 석도(石濤)의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의 것이다. “일획이란 온 무리의 밑바탕이요, 만 가지 형상의 뿌리다. …… 일획의 법이란 자기 스스로 세워진 것이다. …… 무릇 획이란 마음에 따르는 것이다.” 이태호, 「30. 석도 『고과화상화어록』 - 화가는 첫 붓에 예술혼을 적신다」 중에서. http://sambolove.blog.me/221143527289. 여기서 획(劃) 자가 칼 도(刀) 변임은 앞에서 언급한 검객의 비유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하다.


 ₃ 김길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때 약 1만 6천 점에 달하는 작품을 불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전에 그린 잡다한 스타일의 그림들을 일거에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Ⅲ. 


 김길후에게 있어서 새로운 출발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일획에 의한 검정색 일변도의 화풍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태동된 이 화풍은 김길후의 작업에서 이제까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환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가령,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난 〈검은 눈물(Black Tear)〉을 보자. 이 연작은 김길후의 전체적인 검정색 그림의 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른바 ‘금욕’의 상징으로서의 검정색은 한편으로는 그 반대급부로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색채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든 파장의 색을 흡수하는 포용의 색인 까닭이다. 그 검정색을 어떤 연유로 자기 작업의 주조색으로 정했는지는 딱히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중학교 때 ‘고전읽기’ 시간은 흥미로웠다. 그때 만난 ‘명심보감’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을 자주 읽어서일까, 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생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걸, 도덕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혹여 그 억압이 그림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김동기(김길후), 〈작가노트〉 중에서 - 


 김길후가 검정색을 주조로 삼은 이유의 이면에는 이처럼 금욕주의적인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김길후가 그림을 일종의 수행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김길후는 그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검정과 흰색 등 무채색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거기에 추가되는 색을 꼽는다면 노란 기미를 띤 동색(bronze)과 붉은 기미를 띤 구리색(copper), 그리고 가끔씩 첨가되는 청색 정도다. 


 김길후는 이처럼 스스로 단순한 색들로 제한한 정해진 범주 안에서 붓과 물감 등등 그림 도구들을 가지고 논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진지하고도 즐거운 놀이에 다름 아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유년시절에 꽃밭에서 놀던 즐거운 추억을 지니고 있다. 꽃 중에서도 특히 백합꽃을 좋아했다. 그의 그림에 백합꽃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아버지는 서예와 독서, 꽃 가꾸기가 취미였다. 김길후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한 습관은 어느덧 환갑에 도달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외견상 그는 타인의 눈에 매우 낙천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그러나 김길후의 성격이 그렇다고 해서 그림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검정색 그림을 그린 2000년 이후 약 20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들에 나타난 인물상의 분위기는 물론 밝고 낙천적인 것들도 더러 있지만, 어둡고 묵시적이며, 절망에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술회했다. 그러고 보니 둥근 대머리의 등장인물들 거의 대부분이 김길후를 닮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작가의 분신이요, 내면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그 풍경들은 잔혹할 정도로 고독하고 외로우며, 고통에 찬 기록들이다. 특히 〈검은 눈물〉 연작이 그렇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진술로 당시 내면의 풍경을 고백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그린 ‘검은 눈물(Black Tears)’ 연작이다. ‘Black’은 내 마음이 마치 무너져버린 폐허와도 같고, 상실감이 납덩이처럼 누르고 있을 때 탄생했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죽으려고 했는데 당신 작품을 보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그림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주다니…….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유되는가 보다. 나는 평화로운 고도문명 속에서 참담함을 느끼는 인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김길후, 〈검은 상처가 눈물로 빛날 때/작가노트〉 중에서 - 


 위의 진술을 참고할 때 ‘치유의 기능’으로서 김길후의 그림과 이를 매개하는 사제 혹은 샤먼으로서 작가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능과 역할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인가? 나는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강력한 정념(pathos)과 검정색에 방출되는 묵시적 분위기, 그리고 때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들고 싶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면을 뒤덮고 있는 끈끈하고도 일면 섬뜩한 분위기이다. 샤머니스틱한 느낌에 가까운 그것이 아마도 필경은 치유의 원인이리라. 


Ⅳ.

 2016년도에 접어들자 김길후는 이제까지 전념해 온 회화의 영역을 벗어나 관심을 입체와 설치로까지 확장시켜 나갔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자투리 합판이나 각목을 이용하여 삼발이형 인물상을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5년간 대략 1백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으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 나무를 이용한 입체, 설치작업은 김길후의 분방한 상상력이 더욱 증폭돼 나타난 경우일 것이다. 이 삼발이형 작품은 정(鼎) 자를 연상시키는 중국의 제기(祭器)에서 형태적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가깝게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작대기로 받혀 놓은 지게의 모습, 그리고 의미론적으로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三足烏)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개발한 이 형식에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이다.


 김길후는 이 일련의 삼발이형 작품을 제작하면서 형식의 전개에 집중했다. 그것은 의미론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의 영역을 융합하는 형식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붓과 물감통을 들고 있는 이 추상적 형태의 인물상들은 자화상이다. 어떤 것은 완전히 추상적 형태를 이루고 있으나 또 어떤 것은 위 부분에 얼굴이 그려져 있어 인물상임을 암시한다.


 평면이 됐든, 입체물이 됐든 김길후의 예리한 일필휘지가 스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기운생동에 충만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길이가 무려 15센티에 달하는 평붓에 검정색 물감을 듬뿍 묻혀 캔버스 위를 한번 휘저으면, 예리한 칼날에 뎅겅 목이 달아남과 동시에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죽음의 묵시록적인 이미지가 탄생한다. 고도로 긴장된 순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리 속에 피가 솟구치는 전율이 온몸을 파고들면서 초긴장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서 다시 획(劃) 자가 칼 도(刀) 변임을 상기하자. 작가가 든 것은 붓이 아니라 은유로서의 칼이다. 그 칼로 단번에 내리치는(一劃)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김길후의 그림은 말하자면 죽임의 과정이자 죽음의 결과물이다.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이 역설의 미학! 그 피가름의 현장 한복판에 실행자 겸 목격자인 작가 김길후가 서 있다.


 묘사가 잔인하다고? 그러나 여기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죽음은 곧 새로운 탄생이 아니던가. 고대인들은 저녁에 해가 죽으면 아침에 새로운 해가 태어난다고 믿었다. 낙엽이 땅에 떨어지면 그 이듬해 봄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김길후의 묵시록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은 죽음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탄생, 즉 창조의 기쁨을 구가한다.


Ⅴ.

 무엇에 미친다는 것은 대상과 일체가 돼 가는 과정을 이름이다. 그것은 바람, 즉 원망(願望)의 마음이 너무나도 극진하여 두 개의 원이 점차 가까워져 하나의 원으로 합체되는 ‘투 문 정션(Two Moon Junction)’에 비견된다. 따라서 화가가 그림에 미치면 그림과 일체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강렬한 정신적 에너지(氣)가 터져나와 물감과 같은 물질로 전도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정신은 무아(無我)의 상태에 빠지게 되며,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드리핑 작업 후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나는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모른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 몰입의 상태를 두고 한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나는 김길후 역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한자리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캔버스를 향해 휘두르는 붓이 예리한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는 검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죽음이 곧 새로운 탄생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Art as a Medium of Healing

 

Yoon Jin Sup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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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re is a four-character Korean idiom that goes, “bul-gwang-bul-geup (不狂不及).” It means you will not reach your intended goal unless you go crazy to achieve it. This refers to the sublime state of human consciousness ? the continuing state of being deeply immersed in a task. We often use this idiom when a person is deeply focused on playing Go or creating something. An example that resonates more closely with the point of this critique is painting. Applied to the idiom, this means an artist will fail to reach the state of excellence unless he or she is utterly obsessed with painting.


 To me, Kim Gil-hu is an artist who perfectly embodies the idiom in practice. He is crazy about painting. With only slight exaggeration, we can say he is completely possessed by the thought of painting all the time, except for when he sits down to eat. That is why he is known as a prolific artist. He can finish a 116.8 x 91cm painting in just 10 minutes. His works are completed in as little as 5 minutes and up to 30 minutes at most. It is only natural that his studio is packed with paintings. These works that crowd his studio are painted in a single color: black, as dark as coal. (This is true, though it may read like an overstatement. In an interview with me, Kim Gil-hu said, “There are times when it takes longer than an hour to complete paintings on canvases that measure between 259.1 x 193.9cm and 290.9 x 218.2cm.” But from what I saw of his paintings, there are exceptional pieces among those made in 2010 that he painted with a great amount of elaborate detail.)


The movements of the protagonist drawing his revolver in an American cowboy movie are breathtaking. He guns down several foes in the blink of an eye. In a Japanese samurai movie, enemies fall like leaves with the slash of a blind swordsman’s blade. There is also Sirasoni (Yi Sung-sun), a chivalrous fighter who took over the streets of Myeongdong during the 1950s when the Liberty Party ruled, who had unrivaled fighting skill. There are legend-like accounts of gangs he put down filling the streets, while Sirasoni himself had not even taken a single punch.


 Why do these stories about fighting have any place in an art critique? I bring them up because “single stroke” is that important to Kim Gil-hu. For a long time, the artist has been producing monochrome paintings with stark contrast between black and white, and figure paintings constitute the majority of his works. Not only that, almost all of these figure paintings are the artist’s self-portraits. Kim Gil-hu reveals his inner side without even looking into the mirror. The figures in his paintings have short-cropped hair, certainly identifying with the artist himself.


 The strong visual effect of the black and white contrast created by a single brushstroke is a unique feature of Kim’s paintings. The paintings may seem identical at a glance, but there are subtle differences that make each of them unique. The ability to discern such differences is necessary to truly appreciate Kim’s works. Where do those differences stem from? They are rooted in the nuances of his mind at play the moment he stands before the canvas. How brilliant an artist is at capturing these subtle differences in the state of mind and expressing them in the artwork becomes the touchstone of the artist’s excellence. That excellence can be ascertained only through the artist’s work, and of course, Kim Gil-hu falls into the group of artists equipped with that 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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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Gil-hu could be a swordsman who wields a long sword in the air or a dancer who unfolds a breathtaking performance. If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a swordsman, a dancer, and Kim, it is only whether one leaves a trace or not. A swordsman or dancer shows action but leaves no mark. As an artist, Kim leaves traces of his action with the paintbrush. As such, Kim can be likened to a shaman who performs a powerful and magnificent dance ritual with a paintbrush. He dances ecstatically with the brush, attempting to summon the spiritual energy of ancient times that has long been lost. He serves as a shaman who brings art’s function of healing to life today through his artistic invocation.


 Unlike western paintings created from layering coats of paint, Kim’s paintings are born from a single brushstroke, as already mentioned. He quickly transfers the inspirations and images that cross his mind to the canvas. These artistic transfers take place in mere seconds. He must capture the image instantly and reproduce it immediately in a single stroke as the image will vanish if he hesitates. His paintbrush strikes the canvas like a flash of lightning, resembling the quick fire of the gunman in Western films. Actually, it is more like the swordsmanship of the swordsmen in Korean historical dramas. It is a single stroke. One decisive move becomes the single stroke. And that single stroke comes from intense physical and spiritual training.


 Why must we emphasize this one-stroke theory today? It is for differentiation. (The following sentence from the introduction of Shitao’s Kugua heshang huayu lu (苦瓜和尙畵語錄) is worth noting: “This oneness of stroke is the origin of all beings, the root of myriad forms (...) The principle of single stroke was established on its own (...) The stroke, in essence, follows the mind.” Excerpt from Taeho Lee, “On Shitao’s Kugua heshang huayu le: Artists Drench Their First Brushstrokes with the Spirit of Art,” Following Dasan (blog), November 19, 2017, http://sambolove.blog.me/220410985854. The fact that the radical of the Chinese character for stroke (, hua) is knife (, d?o) is very important given the swordsman metaphor discussed earlier.To stand out from others amid the inundation of the same things, it is critical that an artist uses the brush in a unique way, learned from a great deal of training and effort. In 1999, Kim burned all of his paintings to take his second big step in improving the quality of his art. (Kim said in an interview with me that he burned some 16,000 works then. He stated that he cleared out drawings and paintings he had made earlier in miscellaneous styles at once and started to work as if he had been born again as an artist.) Through it, he was born anew as an artist. He burned everything ? from his early drawings and pastel drawings to watercolor paintings and oil paintings, in terms of media, and from abstract paintings to even Minjung art (“people’s” art; a socio-political art movement in South Korea that emerged in the 1980s) paintings that were popular in the ’80s, in terms of genre ? all to produce art in a completely different way than he had until then.


 Then what was his new painting style? Kim said he started to paint mostly in black and white on paper, for the purpose of “betting on simplicity.” He spent about five years immersed in black and white paintings. Then came an opportunity: he was invited to participate in Life Landscape, an exhibition organized by Seoul Museum of Art (August 19-September 17, 2004). Seoul Museum of Art organized this special exhibition on figurative art, which had been marginalized, under the realization that the evolution of the Korean art scene had been heavily focused on abstract art and that art in Korea was skewed toward media, video, conceptual, and installation art. Kim Gil-hu participated in this group exhibition with other figurative artists, including Hwang Young-ja, Lee Heung-duk, Lim Man-hyeok, Kong Sunghun, and Nam Kiho, and exhibited five large paintings measuring 259.1 x 193.9cm in size. This exhibition became a turning point for Kim, who then opened up a new world in his career. (Kim’s name was Kim Dong-ki at the time. He started using the name Kim Gil-hu in 2013 while living and working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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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 Kim Gil-hu, what was this new beginning? It was the painting style of working only in black, single strokes. This style began to emerge in Kim’s paintings around 2000 and signified a major style change to one completely different from his previous works. Take for example, Black Tears from the early 2000s. This series stands as the beginning of the artist’s black paintings. How did the series come into being?

Black represents abstinence ? yet the trade-off for symbolizing abstinence is that black is open to everything. Speaking in terms of chromatics, the color black is open to all because it is a receptive color that absorbs colors of all wavelengths. It is unknown exactly why the artist chose black as his main color to work with, but we can at least infer his reasons from the statement below:

 

 “Classics Reading class in middle school was interesting. Myeongsim bogam (Precious Mirror for Illuminating the Mind-Heart), which I read for the first time then, became a part of my everyday life (...) I had become an ascetic, perhaps because I read Precious Mirror too often at an age when I was sensitive about my feelings. After turning 40, I came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no set rules in life, that I must free myself from moral conventions. I wonder if that suppression is bursting out in the form of my paintings.”


- Excerpt from Kim Dong-ki’s (Kim Gil-hu) Artist Statement

 

 Ascetic thinking was thus behind Kim’s motivation to choose black as his main color. This aligns with the artist’s conception of painting as a type of ascetic practice. For more than 20 years, Kim has been working almost only in black and white. Yellowish bronze, copper with a hue of red, and blue, which he rarely uses, are the only other colors found in his works.


 Kim plays with his art tools such as paint and paintbrushes within the boundaries he has voluntarily fixed, using only a simple set of colors. Although he takes painting seriously, it is also no different from a fun game to him. Kim was born into and grew up in a wealthy family and has pleasant childhood memories of playing in the flower garden. Among all the flowers, he had a special fondness for lilies, which explains why they appear frequently in his paintings. Calligraphy, reading, and gardening were his father’s hobbies. In his youth, Kim had a habit of smiling often, and that has not changed even to this day, at the age of 60. Because of the smile, people get the impression that he is a very optimistic person.


 Yet his optimist character is not necessarily reflected in his painting. Of course, there are figures who look bright and optimistic among the works he has produced over the course of two decades since he first started making black paintings in 2000. However, dark and silent figures agonizing in despair constitute the majority. In an interview with me, the artist revealed that they were the artist himself. Now that I come to think of it, most figures in his paintings have round and bald heads, resembling Kim. Then they must be the artist’s other selves and reflections of his ‘inner landscape.’ Those landscapes reproduced on canvas are records of the brutal loneliness, solitude, and anguish he experienced. Black Tears is particularly so, and the following confession by the artist on the state of his ‘inner landscape’ is noteworthy:


 “My favorite work is the Black Tears series that I worked on from 2001 to 2004. Black Tears was born when my mind was in ruins and laden with a sense of loss. Someone saw the painting in the gallery and said, “I was going to die, then I found someone in a direr situation than mine. So I turned hopeful again.” My painting was a streak of light in someone’s darkness... the cure for sorrow must be greater sorrow. I came to realize that there are many people in distress in the peaceful and advanced civilization we live in.”


- Excerpt from Kim Gil-hu’s When Black Wound Shines with Tears, Artist Statement

 

 Referencing the statement above, we can remind ourselves of Kim’s paintings serving as a “medium of healing” and the role of the artist as a priest or shaman channeling that effect.


 Then where do these functions and roles originate from? I want to direct the answer to the strong pathos found in all of his works, the silent ambience released on the color black, and the facial expressions and gestures of the figures in his paintings that arouse a sense of pity. However, the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aura of heaviness and eeriness, in one aspect, that swamps the canvas. This feeling ? one close to that of shamanism ? is perhaps the source of healing, aft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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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ginning in 2016, Kim Gil-hu started to step outside the boundaries of painting that he had been focused on and expanded the scope of his work to three-dimensional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He used leftover plywood or wooden square blocks commonly found around us and created tripod-like figurative sculptures. He has made more than 100 such pieces over the past five years, so it is certainly more than just a few. Wooden sculptures and installations are probably Kim’s wild imaginings in intensified forms. The origin of the shape of Kim’s tripod-like sculptures may be found in the Chinese ritual vessels that resemble the character ‘,’ and we can also say they resemble jige (Korean A-shaped tool used to transport large materials), often found in rural areas, standing against a stick. In terms of meaning, the three-legged crow in Goguryeo murals is their precedent. But what is most important is the interest and effort the artist invested in this sculptural form he developed.

  

 In constructing the series of his tripod-like sculptures, Kim focused on form development. In terms of meaning, its significance lies in the fact that the forms of his sculptures integrate the characteristics of painting and sculpture. The abstract sculptures carrying paintbrushes and paint bottles are the artist’s self-portraits. Some sculptures are completely abstract, but others have faces painted in at the top, which imply that they are sculptures of figures.


 Kim’s works are instantly animated once his keen single stroke touches them, whether they are flat paintings or three-dimensional installations. The process of them coming to life is truly a marvel. Once Kim’s flat 15cm brush heavily soaked in black paint brushes over the surface of the canvas, an apocalyptic image of death emerges immediately, like dark red blood spouting from a decapitated neck at the slash of a sharp sword. It is a moment of high tension. The moment he paints, his shudders from the thought of blood surging from the head takes over his entire body and brings him to a state of hypertension. Recall here that the radical (indexing component of Chinese characters) of the Chinese character for stroke (, hua) is knife (, d?o). Then what Kim holds in his hand is not a brush, but a metaphorical knife. He uses this “knife” to make a single slash (or single stroke) on the canvas. For this reason, Kim’s painting is, in a sense, the process of killing and the result of death. The aesthetic of coming to life through death! Kim Gil-hu stands right there, at the center of the slaughter scene, as the executor and witness.


 One might think such descriptions are overly bloody. But take a moment to think carefully. Death leads to birth. (In most rituals of sacrifice in shaman initiation ceremonies of both East and West, death prepares the way for new birth through purification.Our ancestors believed that the sun dies every night and a new sun rises each following morning. After leaves fall to the ground, new buds sprout the next spring. In this context, Kim’s paintings of apocalyptic ambience rejoice at the birth of new life rising from death, or the joy of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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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go crazy about something entails the process of becoming one with the subject of that passion. It can be compared to the “two moon junction,” where two moons draw nearer to each other and ultimately become one, because the wish or desire for the other is so strong. So, if an artist is completely absorbed in his painting, he becomes one with it. During that artist-painting unification, a powerful spiritual energy bursts out and is transferred to the medium such as paint. In the process, the artist’s spirit enters a state of annihilation and the artist experiences overwhelming ecstasy. In speaking of drip paintings, Jackson Pollock said, “When I’m painting, I’m not aware of what I’m doing” ? perhaps he was referring to the state of immersion here.

 

 I think Kim Gil-hu may have had a similar experience to that of Pollock. This is why I believe the stroke he makes against the canvas with the paintbrush must feel like a sword cutting through the void with a whoosh of air when he paints at an extremely fast speed in one sitting. He could do so, feeling confident that death gives way to the birth of something new.


<참조>

[공지]2021 학고재 김길후 혼돈의 밤 평론..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