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21 학고재 갤러리 '혼돈의 밤' 김길후 개인전 ② |
<Megazine>
FOCUS “어둠 속에 넘실대는”
김길후展 2021.07.21~08.22 학고재갤러리
<혼돈의 밤>, 학고재가 뽑은 김길후의 전시 제목이다. 평범한 세계의 언어가 아니다. 깊은 예술 속에서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작품들은 몰아치듯 격렬하게 작가를 말해주고 있다. 저널에서도 김길후의 전시가 이슈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다. 예술은 충격이다. 이건 한 세기 전 다다를 이은 초현실주의자의 주장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은 울림이다. 아무런 파동도 만들지 않는 예술이라면 그것을 살아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은 감동이다. 울림과 파동이 밀물처럼 엄습해 감정에 주는 충격을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말한다.
충격과 올림
많은 사람이 김길후의 작품에서 그런 가능성을 읽는다.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이 역설의 미학! 그 피가름의 현장 한복판에 실행자 겸 목격자인 김길후가 서 있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이 같은 평가도 극적이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받고, 학고재갤러리가 주목해 전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평가다. 전시를 보는 여러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그는 자신을 철저히 버린다. 불교에서는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아상(我相)을 버리라 한다. 철저한 비움에서 새로운 창조가 나올 공간이 생긴다. 피카소가 모든 기교를 버리고자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더욱 응축된 원시적 힘의 상태로 가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잘 다듬어진 세련미 하나가 아니다. 있을 수도 없는 완벽한 재현 하나도 아니다. 엄격과 장중함으로 무장한 위대한 숭고 하나도 아니다. 그러니까 하나로 잘 정돈된 최상의 하나만이 아니다. 여러 방향으로 분출 직전의 지점에서 어떠한 성취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의 힘이다. 발달한 어느 '기관' 하나가 아니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들뢰즈는 그것을 '기관 없는 신체(Ic corps sans organes)'라고 불렀다.
김길후는 알(卵)과 같은 상태를 위해 자신의 분화된 '기관'들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그는 어떠한 성과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숙련된 교육으로 길러진 습성도 버렸다. 수많은 성취를 이루던 규정된 어떤' 미술과도 결별했다. 1만 6천 점에 달하던 자신의 그림마저도 소각해 버리기에 이른다. 그때까지 그 성과를 만들어온 자신의 이름조차 버리고 개명해 김길후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몰입을 위해서라고. 그것은 철저히 의식을 비워내야 가능한 것이라고, 물아일체나 불교의 삼매 경지를 예로 든다. 대체로 그렇다. 예술을 누가 평범하다 하는가. 시대의 구원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샤먼처럼 치유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예술이지 않을까. 평범하게 교육받고 익혔던 의식을 벗어나야 볼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는 게 바로 예술이 아니던가.
그의 거대한 작품 앞에 선다. 모든 색을 품어 검은, 칠흑 같은 어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 위로 금색, 청동색과 같은 금속성 색채나 검정이 섞인 연한 흰색 붓 자국이 춤을 추듯 지나갔다. 그 붓은 작가 의식 속의 무엇을 그리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지는 형상이랄까. 고착된 형상이 아닌 그림은 유동적으로, 관람자 스스로가 어떤 형태로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까 텅 빈 추상도 아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의 여파가 넘실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붓 선을 그의 필치에 맞춰 읽을 필요도 없다. 작가의 말대로 야심 찬 의도가 작품에 숨어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니까. 이 무한의 힘을 전시 제목의 저 혼돈이라 하자. 그렇지만 적어오 하나, 김길후는 오늘의 미술이 나아갈 방향은 명시하는 듯하다. 그것은 21세기를 준비하던 사상가들이 예술에 바라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미술은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재현을 넘어서, 그리고 추상을 넘어서. / 최형순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 x 194cm, 2021 /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259x194cm
김길후(1961년생)는 1999년 자신의 작품 1만 6천여 점을 불태우고, 2013년 김동기에서 김길후로 개명했다. 개인전 <혼돈의 방>은 원시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관습을 잊고 본성으로 회귀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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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밤〉. 학고재가 뽑은 김길후의 전시 제목이다. 평범한 세계의 언어가 아니다. 깊은 예술 속에서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작품들은 몰아치듯 격렬하게 작가를 말해주고 있다. 저널에서도 김길후의 전시가 이슈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다. 예술은 충격이다. 이건 한 세기 전 다다를 이은 초현실주의자의 주장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은 울림이다. 아무런 파동도 만들지 않는 예술이라면 그것을 살아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은 감동이 다. 울림과 파동이 밀물처럼 엄습해 감정에 주는 충격을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말한다.
글_최형순(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장) / 에디터_김해리 기자 @haerrypotter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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