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2021 김길후 단체전 |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SUMUK-Jeonnam International SUMUK Biennale 2021展)
오채찬란 모노크롬: 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Splendor of Monochrome: the New Beginning of the vibrant)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4x260cm
서양의 유화에 대비되는 동양의 고유한 회화 매체인 수묵화는 '물(水)'을 매제로 삼는다. 유화의 용제가 '기름(油)'인 것과 대비된다. '물과 기름의 관계'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서로 상극의 양태를 보인다.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상태를 가리켜 '물과 기름의 관계'로 비유하듯이, 문화에서도 동양과 서양은 상호 간의 특수한 문화적 성질과 양태로 인해 때로는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기름을 용제로 삼는 유화는 대체로 '어둠(暗)' 속에서 '밝음(明)'을 이끌어내는 회화의 형식이다. 반면, 물을 매재로 하는 수묵화에는 그러한 색의 위계가 없다. 색과 색의 결합에 의해 제3의 색을 만들어 내는 유화와는 달리, 수묵화는 먹(墨)과 물의 결합에 의해 세계를 해석한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의 농도이다. 먹에 물이 얼마나 함유되느냐에 따라 먹색이 결정된다. 따라서 흔히 수묵화라고 할 때, 그 요체는 바로 이 먹과 물의 사용에 있는 것이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여러 전시중 하나인 [수묵정신]전은 국내외의 작가 21명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수목의 기법과 정신이 한국화(韓國書) 외의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는 전시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회화를 비롯하여 섬치미술, 오브체 아트, 미디어아트 등등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분야에서 함동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양태는 이질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은 수묵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비록 먹과 물을 주된 재료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목의 고유한 기법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서구인의 경우, 수목작품을 참고로 하여 자신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사실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은 수묵을 임상에서 접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수묵의 영향권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작가들 대부분은 서양의 문물에 의해 동양의 문화와 정신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근현대화의 과정을 통해 몸소 겪었다. 따라서 비록 수육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록의 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으리라 믿는다. 그 고민의 깊이가 이번 출품작 속에 질게 배어있다. 자연과 선비의 정신을 먹과 물이라는 단순한 매채로 표현하기 위해 동양의 예습가들은 각고의 노력 꿈에 고유의 양식을 창안해 냈다 / 윤진섭 Yoon Jin Sub
<작품 소개>
화가의 자아는 그리는 행위의 의식을 검열하여서는 안 된다. 의식이 비(非)자아 상태에 이를 때, 그림은 비로소 현상학의 토대 위에서 창조된 작품으로 서의 맥락을 획득한다. 동양의 물아일체(物我一體), 불교의 삼매(三昧)의 경지 와도 맞닿는 생각이다. 그 그림에서 형상은 해체되지만, 이를 추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추상을 규정하는 일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이원론적 태도를 고수하는 행위에 이르러 자아가 의식을 검열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림 속 화면은 구상도 추상도 아닌, 나아가 구상일 수도 있고 추상일 수도 있는 모호한 상태를 유지한다. 나는 의식을 완전히 비워낸 상태를 확립하는 것이 작업의 가장 주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아이가 모래성 쌓기 놀이에 몰입된 상태와 같은 마음을 투영하는 일이다. 설령 바닷물에 휩쓸려 모래성이 무너지더라도 거리낌 없이 모래성을 다시 쌓아 올린다. 작가의 행위만이 남을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2021.09 김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