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2016 모든 것을 감추고 드러내는 '검은색의 변주'-매일신문 |
모든 것을 감추고 드러내는 '검은색의 변주'
매일신문 | 입력 2016-01-11 | 최재수 기자
포항에 온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전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전이 14일(목)부터 4월 3일(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김길후 작가는 검은색을 주재료로 작업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첫인상은 어둡다. 검은색 물감과 그 두께가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표면도 울퉁불퉁하다. 캔버스에 시커멓게 달라붙고 얼룩진 게 혼돈 그 자체다.
하지만 김 작가의 검은색은 단순히 검은 색깔에 머무르지 않는다. 빛이 있다. 이미지의 표면에 반사돼 형체를 드러내게 하는 빛이 아니라 표면 밑으로 스며들어 물성을 드러내게 하는 빛이다. 김 작가는 형상 속에 빛을 부여했고 그 빛은 묵직한 물성을 생성한다. 그 빛은 어둠을 비추는 달빛처럼 은은하다.
이처럼 김 작가는 어둠을 그린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작품을 한참 보고 있으면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내가 의도했던 혹은 기대했던 무엇이 은근하게 비칠 때까지, 형체를 그려가면서 동시에 형체를 지우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에게 있어 검은색은 모든 것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방식이다. 눈에 보이는 검은색의 어두운 단면이 아닌, 그 뒤에 가려진 무수한 빛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김 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검은색이라는 색을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다.
김 작가의 작품을 특징짓는 것은 내용적인 것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붓질이 투박하고 거침이 없다. 밑그림 없이 단 한 번에 그려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 전달을 위한 절제된 표현으로 깊이와 세련됨을 더한다. 붓과 못, 조각칼로 화면에 깊이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검은색 안에 많은 다른 색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많은 걸 그려 보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김 작가의 작품은 구도의 붓질로 완성된다. 오랜 명상 끝에 한 작품이 탄생한다. 오랜 시간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을 그림으로 형상화한다. 마음과 몸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계속해서 지우고 덧칠하기를 반복한다. 김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많이 생각한 다음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왕춘천 교수는 "김 작가는 모더니즘의 형태를 추종하지 않고 한국적 문화와 자신의 경험, 그리고 직관적으로 자신만의 형태를 창조했다. 특히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지만 어떤 것으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면을 갖고 있다"며 "검은색을 주로 사용하지만 입체감이 살아 있고 작품 속 인물은 단순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라고 평했다.
포항시립미술관 김갑수 관장은 "이번 포항 전시회는 김 작가의 최근 10여 년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파워풀한 에너지로 거침없이 그려나가는 김 작가의 자연을 닮은 붓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는 이름 없는 인물의 기념비적인 삶의 이미지에서 진실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회화와 판화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김 작가는 계명대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과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054)250-6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