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윤석남·김길후…세대를 넘은 만남

매일경제 | 김슬기 기자 | 입력 : 2024-03-22 16:08:25 수정 : 2024-03-22 19:18:40

학고재 본관 기획전 '함' 열어 시대도 성별도 장르도 다른 3인 휴머니즘 찾아가는 3가지 시각

 백남준의 'W3'는 인터넷이 지배하는 21세기를 1994년에 예견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제목은 인터넷을 전 세계에 전파시킨 월드와이드웹(WWW)을 상징한다. 디지털 고속도로를 형상화하며 두 줄의 어긋나는 W 형태로 배열된 TV 모니터 64개를 이 전시는 주역의 64괘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밖에도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기념해 낙관적 세계관을 축구공 형태로 구현한 '구-일렉트로닉 포인트'(1990), 눈과 입은 TV 브라운관으로 표현해 인터넷에 거주하는 인간을 상징한 '인터넷 드웰러'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선지자 백남준을 대표하는 미디어 아트가 후배 작가의 작품과 어우러진다.

백남준(1932~2006), 윤석남(85), 김길후(62). 시대도 성별도 장르도 다른 세 작가가 만났다. 학고재 본관에서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가 4월 20일까지 열린다. 중국 고전 '주역(周易)'의 서른한 번째 괘이자 '함께'라는 말에 들어가는 어근인 '함(咸)'의 의미를 통해 현대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묻기 위해 기획됐다. 'sentient beings'는 중생(衆生)과 같은 말로 세 작가가 '휴머니즘'을 탐구한 작품들이 전시장에서 조화를 이룬다.

 여성주의 예술의 대모 윤석남은 유기견 1025마리의 형상을 나무에 조각한 '1025: 사람과 사람 없이'의 일부를 선보인다. 유기견 1025마리를 보살피는 이애신 할머니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시 '애신의 집'을 방문한 뒤 5년을 오롯이 쏟아부어 완성한 작업이다. 버려진 나무에 유기견 형상을 깎아 만들고 그 위에 먹으로 그려서 완성한 작품을 출품해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의미를 전한다. 윤석남 작가는 "유기견에 대한 애틋함과 강아지를 유기한 인간의 잘못을 사죄받고 싶은 심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변화무쌍한 회화적 창조성을 선보이고 있는 김길후는 2000년대 들어 불학에 정진했다. 2010년작으로 불교의 염화미소(拈花微笑)를 담은 듯한 '사유의 손'을 비롯해 2014년작 '무제' 등 대작은 회화인데도 조각적 입체감을 자아내며 인물 표정에서는 깊이가 느껴진다. 이진명 학고재 이사는 "김길후의 예술 화두는 '현자'와 '바른 깨우침'의 의미를 회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있으며, 그림의 진실한 추구에서 여래(如來)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종교적 세계관을 펼쳐 보인 작가는 학고재 신관 지하 2층에 180도 다른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케 하는 파격적인 붓질의 인물화와 드로잉을 대거 걸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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