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펼쳐진 깨달음과 침묵의 세계…김길후 개인전 《불이(不二)》
김연신 기자 | 서울문화투데이 | 2024.07.24 10:28 ? 8.1~8.31,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블랙’의 작가, 김길후의 개인전이 2021년 학고재에서 개최된 《혼돈의 밤》 이후 3년만에 열린다. 내달 1일부터 31 일까지, 길 후(b. 1961, 부산) 개인전 《불이(不二)》가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개최된다.
깨달음과 초월
길 후는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을 수십 년간 탐구해 왔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불의 초상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화두는 바로 ‘깨달음’에 자리한다.
2000 년대에 들어서 불학에 정진한 그는, 특히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라 일컫는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나 언어로 진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천년 간 여러 방편을 통해 이를 문자화하고 시각화해 왔다. 길 후의 예술 세계 또한 언전불급(言詮不及)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다.
침묵의 세계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는 대립을 떠난 경지를 ‘불이(不二)’라 부른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 평등한 경지가 불이의 의미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보리가 즉 번뇌라는 뜻이며 [煩惱卽菩提], 생사와 열반에 구분이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써 표현하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유마거사는 침묵으로 설했다.
길 후는 이러한 침묵의 세계를 시각 예술로 표현한다. 2010 년대부터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인물을 전경에 크게 내세운 파격적인 구도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선에서 그 어떤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재료를 두텁게 쌓아 올린 표면은 마치 동굴 벽화를 떠올리며,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고요한 어둠 속에 자리한 인물은 열반의 빛을 느끼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그를 둘러싼 주변과 하나 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의 ‘현자’는 부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바르게 보고 행하는 수행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는 2020 년대부터 일필휘지의 에너지가 담긴, 선(線)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유화를 선보여왔다. 흩날리듯 켜켜이 쌓아 올려진 선에는 인연화합에 따라, 흘러내리거나 솟구쳐 오르는 고정불변한 진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의 형상 같기도, 커다란 나무의 모습 같기도 한 형체는 꿈과 같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현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매 순간 선택한 마음의 거울에 따라 그 모습과 느낌을 달리 한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의 세상임을 상기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 점을 선보인다.
한편, 길 후는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8년 계명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1996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SAC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여 같은 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포항시립미술관(포항), 송장당대문헌전시관(베이징)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14년에는 베이징 화이트 아트박스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1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020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서울), 대구미술관(대구), 소카 아트센터(베이징), 우봉미술관(대구)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1년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참고>
캔버스에 펼쳐진 깨달음과 침묵의 세계…김길후 개인전 《불이(不二)》 - 서울문화투데이 (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