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3] 2024 서양화가 길후 작가 ‘불이(不二)’展…일필휘지로 드러낸 깨달음의 세계 - 불교신문

 

서양화가 길후 작가 ‘불이(不二)’展…일필휘지로 드러낸 깨달음의 세계

불교신문 | 박인탁 기자 | 입력 2024.08.13 14:21

 

8월31일까지 ‘빌라쥬 드 아난티’서 2000년대 들어 ‘불교’에 심취

다양한 매체,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예술 화두는 ‘깨달음’ ‘현자’ ‘사유의 손’ 시리즈 비롯 평면과 조각 작품 60여 점 전시

 

 

<유마경>에서는 ‘불이(不二)’를 상태 분별이 없고 절대 차별이 없는 세계를 일컫는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 평등한 경지가 ‘불이’의 의미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보리가 즉 번뇌라는 뜻이며 생사와 열반에 구분이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써 표현하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유마거사는 침묵으로써 보여줬다.

 

서양화가인 길후(작가명) 작가는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을 수십 년 동안 탐구해 왔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부처님의 초상에서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화두는 바로 ‘깨달음’이다. 2000년대 들어서 불교에 심취한 길후 작가는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라 일컫는 ‘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이지만 우리는 수천년 동안 여러 방편을 통해 이를 문자화하고 시각화해 왔다.

 

길후 작가 또한 언전불급(言詮不及)한 깨달음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데 매진해 왔다. 길후 작가가 8월31일까지 한달동안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개인전 ‘불이(不二)’를 연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서울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 ‘혼돈의 밤’ 이후 3년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더불어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 점으로 마련됐다.

 

길후 작가는 2010년대부터 ‘현자(The Wise Man)’와 ‘사유의 손(The Thinking Hand)’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현자 시리즈는 견성(見性)을 통해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현자의 모습을 배경과 구분이 모호한 형태로 그리는 게 특징이다. 작품 속 두텁게 쌓아 올려진 ‘마티에르’는 작품에 조각적 입체감을 더한다. 이는 그의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특성 중 하나이다.

 

현자 작품은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는 동시에 높이 솟아오른 산봉우리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특히 작품 속 ‘현자’는 부처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바르게 보고 행하는 수행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진리 안에 모두가 일체임을 상기한다. 우측 상단의 붉은 색채는 빛이 작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기쁨을 강렬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사유의 손’ 시리즈는 수신(修身)의 요체인 정각정행(正覺正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바른 자리를 깨닫고 보면 바른 자리가 곧 부처님의 마음자리이며, 동시에 각자의 마음자리임을 알게 된다. 사유는 정각을 가리키며, 작품에서 90도로 기울인 얼굴이 정각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그려졌다. 나무의 뿌리처럼 굵고 커다란 두 손은 바르고 원만한 행위, 즉 정행을 상징한다. 검은 두 눈을 지닌 인물은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다. 뱃속에 웅크린 자세로 자리를 튼 태아를 상기하기도, 생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의 몸을 떠올리기도 한다. 생사에는 다름이 없으며, 생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순환을 거친다는 점을 은유한다.

 

‘무제(Untitled)’ 시리즈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붓질로 화면을 채운 작품으로 바람에 흩날리듯 자유로운 필선에 그의 예술혼이 응집돼 있다. 작품 속 형상은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에너지로 가득 찬 형태 그 자체로 인식된다.

 

한편 길후 작가는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난 뒤 계명대 회화과에 수학하며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길후 작가는 200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국 등지에서 10여 차례 개인전을 열어왔다. 작가는 2005년 SAC 젊은작가상, 2021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2024년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대구와 베이징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

서양화가 길후 작가 ‘불이(不二)’展…일필휘지로 드러낸 깨달음의 세계 < 문화 < 기사본문 - 불교신문 (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