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5] 2008 [문화와 사람]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초대 김동기-매일신문 |
[문화와 사람]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초대 김동기
이경달 기자 | 매일신문 | 입력 2008-05-15 07:14:29 수정 2008-05-15 07:14:29
"알아주는 이 없어도 그리는 게 좋아"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나머지 쾌락을 모두 반납했다. 나에게는 이룩해야 할 꿈이 있어 다른 곳에 쏟을 정열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할 짓 다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건 웃기는 일이다. 간절히 원한다면 오직 한 가지만 해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화실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작가 김동기(47·사진)씨가 6월 1일까지 대구보건대 대구아트센터 인당박물관(053-320-1800)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열정이 식을까 염려돼 화실을 나서기가 가장 두렵다"는 말처럼 그는 15년 동안 우직스럽게 그림만을 그렸다. 한가지 주제를 정해 놓고 그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일관성은 깊이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실됨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 일관성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시리즈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하루 13시간 이상 화실에 붙박여 지내왔기에 그동안 그린 작품의 양도 방대하다. 물량이 뒷받침되어야 질적 담보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벌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만 1천여점을 그렸다. 5개 전시실과 로비를 모두 사용하는 이번 전시에는 200호 대작 20여점을 비롯, 200여 점이 걸린다. 모두 2001년 이후 그린 그림들로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고스란히 투영된 신표현주의 작품들이다.
전시는 '검은 눈물', '비밀의 화원', '에게해의 진주'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물감을 칠한 뒤 도구로 긁어내면서 형상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탄생됐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한 '검은 눈물' 시리즈는 작가의 내면적 초상을 담고 있다. 망치, 못 등의 도구가 남긴 비정형의 얼룩과 스크래치는 작가 내면의 상처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내 마음이 무너져 버린 폐허와 같을 때 탄생한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아야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1999년 이전에 그렸던 구상 작품 1만6천여 점을 모두 태워 버렸다. 자식 같은 작품을 버리는 아픔 속에서 탄생한 '검은 눈물'을 통해 작가는 신표현주의 화가로 변신했다. 인간의 감성을 담고 싶어 실존 문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신표현주의를 선택했다는 것.
2005~2007년 작 '비밀의 화원'은 금, 은, 동, 산화철, 진주가루 등을 젤에 섞어서 엷게 여러번 칠한 뒤 긁어낸 그림들이다. 검정이나 회흑색 화면에서 은근하게 빛을 발하는 발광효과가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밀의 화원'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작가가 불러들인 유년기의 정원이다. 그는 "진한 아픔이 배어 있는 '검은 눈물' 시리즈를 그리고 난 뒤 '아름다운 시절은 없었나'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찾은 시절이 30년여전 중학교 때였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와 꽃밭이 있어 내 삶이 환하고 풍요로웠다. 내 기억 창고에 저장된 순수의 시간이 '비밀의 화원'으로 발아된 것이다"고 말했다. 작가는 '비밀의 화원'시리즈에서 꽃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성기를 노출시킨 천진난만한 모습을 통해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으며 몸에서 꽃들이 피어나는 작품에서는 자신의 몸을 꽃들에게 내어줌으로써 자연과의 동화 현상을 실현했다.
가장 최근작인 '에게해의 진주'는 예리한 칼을 사용해 종이를 오려내며 형상을 만들었다. 과정이 판화 제작을 닮았다. 작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 부인을 통해 자신의 기억에 내재된 경험을 불러내고 있다. "중학교 때 폴모리아 악단이 연주한 에게해의 진주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 어느날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독특한 발상과 기법을 대담한 스케일로 풀어내는 김동기씨는 "그림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 팔리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는 등식 대신 회화가 인간에게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다. "예술은 예술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내가 검은 색조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팔리지 않는 그림을 왜 그리느냐고. 그럴 때 난 팔려고 그리지 않는다. 내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스케일이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담고 싶은 바가 많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스스로를 변방의 고수라 칭한다. 재패하고 싶은 무림의 중원은 바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다. "비록 좌절로 끝날지라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 숙명이다. 나는 그리는 자체가 좋다. 나를 알아주는 이를 기다릴 것이다. 오지 않아도 즐겁게 기다릴 것이다"며 웃음 지었다./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참고>
[공지]2008 문화와 사람 대구보건대 인당박.. : 네이버블로그 (naver.com)